1998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 개봉되었을 때 그 영화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선 필견의 무비였다. 그런데 그 [타이타닉]을 안 본, 못 본 사람이 있다면? 핀란드의 이 남자가 ‘타이타닉’을 여태 보지 않은 이유를 따라간 본다.
핀란드 탐페레에 살고 있는 야코는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다. 병세는 악화되어 시력은 상실했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하루 종일 집에서 휠체어를 탄 신세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전화로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것이다. 저 멀리 해멘린나에 살고 있는 시르파는 그의 '폰팔'이자 '소울메이트'이다. 시르파도 큰 병을 앓고 있다. 복지사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야코는 어느 날 큰 결심을 한다. 해멘린나의 시르파의 집을 찾아가는 것. 둘이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다. DVD를 가방에 넣고, 휠체어에 타고 문을 나선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장애인에겐 천국이라는 북유럽복지국가 핀란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야코를 연기한 핀란드의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배우는 실제 다발경화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채 장애인 연금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오랜 친구인 테무 니키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완성시킨다. 영화는 온몸으로 장애인의 형편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깅 중인 남자의 운동화가 보인다. 이 장면은 계속 반복된다. 야코는 잠이 들면 항상 이 꿈을 꾸는 것이다. 화면은 주인공을 제외한 배경화면이 블러 처리된 듯 흐릿하다. 주인공이 시력을 잃었음을 알려준다. 이 불편한 삶, 육체적 고통이여!
야코는 자신의 삶을 그나마 유쾌하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야코는 영화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시르파와 끊임없이 영화에 대한 농담을 한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 복지사에게 ‘애니 윌킨스’(미저리 여주인공)나 ‘래치드 간호사’(‘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에 등장하는 나쁜 수간호사) 같다는 농담을 던진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보다는 존 카펜터를 백 배, 천 배 낫다고 믿는다.
‘장애인’ 야코의 모습과 천리 떨어진 곳에 사는 시르파와의 온라인 수다를 지켜보면서 관객은 야코의 원행길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영화는 그가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포물이 되어버린다. 세상엔 친절한 사람,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불편함을 넘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야코는 시르파를 만나기 위해 ‘1000킬로미터’의 먼 길을 떠난다고 한다. 찾아보니 탐페레(Tampere)와 헤멘린나(Hämeenlinna)는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휠체어 신세의 장애인에게는 천로역정(天路‘力’程)일 것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아마 그날 즈음하면 TV뉴스에선 사람들이 안대를 하고 시각장애인의 고통을 체험하는 모습이 다뤄질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보도블럭이 얼마나 장애인에게 장벽이 되는지 증명할 것이다. ‘야코’는 집밖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코는 길을 나선다. 단지 [타이타닉]을 보기 위해서일까?, 시르파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자신의 삶의 의지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일까. 분명한 것은 세상이 장애인에게 날강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영어제목:The Blind Man Who Did Not Want to See Titanic) ▷감독:티무 니키 출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개봉:222년 3월 10일 12세 관람가 #박재환 KBS미디어 #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