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당시, 한국의 대학생이었던 임수경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는 장면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면서 한국 사회에 일대 핵폭탄급 혼란이 야기됐다. 이후 북한에 대한 우호적, 체제 옹호적 발언이 나오면 다른(!) 진영에서는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라는 말이 나온다. 남쪽의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며 북쪽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사람을 ‘빨갱이’라 지칭하며 북송을 권하는 ‘분리의 레토릭’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고 싶다고, 보내고 싶다고 갈수 있는 국가시스템일까? 오늘(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우를 다룬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탈북자’이야기이다.
<그림자꽃>은 한 ‘탈북’인사를 뒤쫓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탈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련희라는 사람이다.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련희는 1993년 결혼하여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평양에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북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주부였던 그는 건강 문제로 고생한다. 다행히 중국에 친척이 있어 치료를 위해 중국으로 나올 수 있었단다. 하지만 엄청난 병원치료비에 절망한 김련희는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북으로 가기 전 선양의 조선족 식당에서 잠깐 일을 한다. 여기서 한 달만 일해도 북한에서는 큰돈이라니. 그런데, 그곳에서 그만 운명이 달라진다. ‘브로커’가 등장한 것이다. “남한에 가서 몇 달만 일하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속아’ 10여 명의 북한 동포들과 함께 ‘탈북자 그룹’이 된다. 중간에 마음이 바뀐 김련희는 한국에 못 가겠다고 했지만 이미 북한여권을 빼앗긴 상태이고, 순진하게도(!) 남한 사람에게 자신의 사정을 잘 설명하면 돌려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김련희는 2012년 9월 16일 한국으로 들어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탈북자’의 한국 사회 정착이 시작된다. 물론, 김련희는 자신은 여기 잘못 온 사람이며,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주장한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정부, 국정원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김련희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그 주장의 정당성, 신뢰성, 혹은 부당성과 불법성을 따지지 않는다. 김련희의 입장에서, 김련희를 둘러싼 환경에서 그의 목소리를 담는다. 사태를 지켜보면 김련희는 대한민국 입국 후, 국정원을 나가기 위해 각서(전향서/보호동의서)를 썼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하나원에 들어갔고, 지원금을 받았고, 경북 경산의 임대아파트 입주권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김련희는 계속 북송을 요구한다. 그 사이 ‘국가보안법의 간첩죄’로 유죄 선고도 받는다. 재판과정에서는 김련희가 입국 이후 줄곧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이승준 감독은 ‘김련희’의 평양 집도 카메라에 담았다. 당연히 감독이 직접 평양에 간 것은 아니고 친분이 있는 핀란드 감독(미카 마틸라)이 대신 북한에 들어가 찍은 것이란다. <그림자꽃>에는 김련희의 남편과 딸의 근황이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김련희는 평양의 딸과 직접 통화도 하고, 특별한 기회엔 영상통화도 시도한다.
엄청난 스파이도, 대단한 테러리스트도 못되는 평양주부 김련희는 왜 남한 땅에 발이 묶였을까. 입국 당시 국정원의 처리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북쪽에 억류된 우리 국민과의 ‘교환’을 염두에 둔 조치일까. 외국에선 외교적 억류문제가 ‘간첩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으니.
분명한 것은 법률의 미비인 듯하다. 어떤 식이든 ‘잘못 배달된’, ‘혹은 순간의 실수’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를 뒤집을 프로토콜이 없는 모양이다. 여러 정황상 ‘본인 의사에 반해’ 남한에 들어온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런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인 송환 방식을 검토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어선이 표류하다 저쪽으로 넘어갔을 경우 처리되는 방식처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이래 수많은 사람이 북으로 돌아가서는 ‘남한사회 비방의 나팔수’가 되는 것을 보아왔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귀환자의 활용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다고 체제가 흔들릴까. 어쩌면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인적교류가 통일의 진정한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에서 배제되었다고 다른 쪽에서 환호 받는 남과 북이라면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는 징표일지 모른다.
이승준 감독은 김련희에 대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찾아보았다. 김련희는 북한영사관과 다섯 차례 통화를 했단다. “남한으로 잘못 오게 되었다. 날 좀 구출해 달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중국의) 북한의 영사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중국까지만 오라. 그러면 공화국으로 보내주겠다”고. 김련희는 출국이 막혀있고, 밀입국 시도도 포기한 상태란다.
참, 이승준 감독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휘황찬란한 성과를 거둘 때 <부재의 기억>으로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김련희의 사연을 통해 남과 북의 대치라는 것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념과 체제 우위의 선전전에 앞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그림자꽃 감독: 이승준 2021년 10월 27일개봉 12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