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단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칼날 같은 침대도 편하고, 사이가 나쁘면 운동장만큼 넓어도 비좁다”는 뭐 그런 내용. ‘조강지처’니 ‘가난한 날의 행복’ 같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취업난에 집값폭등 시절에는 말이다. 지난 주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제의 위상과 경륜만큼 주어지는 상(賞)이 많다. 특히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과 ‘뉴 커런츠’ 섹션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는 항상 주목된다. 올해 상영작 중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KBS독립영화상’과 '크리틱b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화는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부부의 커플 무비이다. 과연 그들의 침대 사이즈를 보자!
젊은 부부가 있다. 힘든 시기를 맞았다. 남편은 대리운전에, 택배를 전전하고 아내는 음식배달에 시간제 강사를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둘은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행복하다. 악착같이 일자리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곧 취직할 것이고 이 순간의 고비만 잘 넘기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남편의 잘 아는 형이 풀프레임 DSLR카메라를 빌려가면서 돌려줄 생각을 않는다. 한 푼이 아쉬운 때인데 말이다. 아내의 어머니 생일날 다른 사람들은 봉투에 두둑한 용돈을 챙겨준다.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못한 이들 부부의 마음이 아프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며 항상 웃고, 서로를 믿던 아내가 몰래 사채에 손을 댄다. 위기의 부부, 이 고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는 현실 커플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전혀 새롭다. 부부는 무미건조하게 하면서도 핵심을 다 갖춘, 의미 있는 대사를 주고받는다.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사채까지 쓴 건 아니잖아. 사채 썼다가는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한다. 외부 현실의 고달픔도 충분히 타개할 것 같은 정신자세로 무장되어 있으면서도 순간적 판단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은 이 커플만큼 착하다. 하다못해 불법 피라미드를 권하는 친구 놈도, 사채업자도, 카메라 떼먹는 동네 형도 모질지를 못하다.
영화를 전공하고 현장에서 녹음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송열 감독은 첫 번째 장편영화 <가끔 구름>이 2018 인디포럼 선정작으로, 전북독립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바 있다. 올해 KBS독립영화상 심사위원들은 이 영화에 대해 ”생생한 캐릭터, 미묘한 재치, 독특한 리듬, 세밀한 카메라 작업, 그리고 균형 잡힌 이야기로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박송열과 원향라는 한국독립영화계에 흥미로운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왔다.”고 평했다.
부부간의 대화, 남편의 선택, 아내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부부의 행복이란 게 어떻게 이뤄지는지 느끼게 된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우산살이 부러지더라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가난이 어찌하지 못하는 초긍정 신혼부부의 판타지 행복드라마이다. 부산영화제에 이어 11월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된다. #영화리뷰 #박재환 KBS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