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친절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러한 불합리한 세상일지라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루만지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감독 임상수)는 죽음을 앞둔 탈옥수와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병원 직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수 번호 203으로 불리는 남자(최민식 분)는 교도소 수감 중 고통으로 인해 병원을 찾게 되고, 길어야 2주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남은 인생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탈출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난치병을 지니고 있지만 가난으로 인해 병원에서 약을 훔쳐 맞으며 살아가는 남식(박해일 분)과 마주친다. 병원에서는 이미 남식의 절도에 대해 눈치채 경찰을 부른 상황, 오갈 데 없는 두 남자는 함께 말 그대로 '인생 탈출'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당황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탈출하던 중 장례차를 탈취하는데 관 안에서 시체가 아닌 어마어마한 돈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말 그대로의 일확천금을 얻게 된 그들은 돈과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 그 뒤를 의문의 건달들이 쫓게 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배우 최민식, 그리고 박해일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이의 몸짓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연기한 최민식은 생을 2주 남긴 사람의 막막함, 그리고 세상에 남겨질 딸을 향한 애타는 부성애를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더불어 죽음에 대해 덤덤한 채로 살아온 남식을 연기한 박해일 또한 최민식과의 호흡에서 전혀 지지 않는 기세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온 그의 모습은 어딘가 느긋하고 의연하다가도 폭력을 휘두르는 건달들 앞에서는 살고 싶어 발버둥 친다.
물론 중후반부 한국형 신파 클리셰가 등장하면서부터 서사의 전개가 개연성이 사라지고 지루함이 묻어나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조차 파란 머리로 등장하는 203의 딸, 이재인의 애절한 연기가 극복해낸다. 이재인과 호흡을 맞춘 친구 역을 맡은 배우 임성미의 얼굴도 반갑다.
'행복의 나라로',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처럼 행복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불행에 가까운 영화다. 결말이 행복을 향해가는 영화가 아닐뿐더러, 주인공들조차 굳이 따지자면 불행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타고난 인간 군상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은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던 세상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그들은 함께 숲길을 걸으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비로소, 작품의 결말에 다다라서 남식은 203이라고 불리던 이에게 비로소 이선우라는 이름을 찾아준다. 나락에 떨어진 타인이 아닌, 제대로 마주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결말은 생이 불합리함의 연속일지라도 인간의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이 있다면 견뎌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바라본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