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원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돈을 위해 되돌릴 수 없는 가치를 포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은 이러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잔혹함을 다룬 작품이다.
극중 주인공인 기훈(이정재 분)은 빚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다. 기훈은 주변인들에게 한심한 가장으로 보여지는 인물이다. 구조조정 당한 후 가게를 열었음에도 실패한 그는 크나큰 빚을 지게 된다. 그는 도박에 빠지게 되고 이혼을 당한다.
딸의 생일에도 도박을 위해 경마장을 찾을 정도로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그는 도박할 돈이 없자 ATM을 찾아간다. 돈을 빼가지 못하게 그의 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감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친구가 어머니의 생일을 입력해보라고 하지만 어머니의 생일은 떠올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불효자의 온상이다.
이렇듯 기훈의 인생에는 희망의 탈출구조차 없다. 대리운전으로 은행 빚과 사채 빚을 갚아보려하지만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며 사랑하는 딸이 재혼한 엄마의 가정과 함께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듯한 절망을 느끼게 된다.
기훈은 그러기에 사랑하는 딸과 이별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일으키기 위해 황당한 게임이지만 참가를 결심한다. 의심 반, 믿음 반으로 게임에 참여한 그는 늦은 밤 납치된 뒤 미스터리한 장소로 끌려가게 된다.
'오징어 게임'에는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포인트들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우리를 신나게 만들었던 동심 가득한 게임들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지옥의 게임으로 변신한다. 유년 시절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은 새로운 룰을 착안해 참가자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더불어 주연 배우 이외에도 연기력이 빛나는 조연 배우들의 호흡 또한 인상 깊다. 저마다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한 그들의 호연은 극중 펼쳐지는 인간 군상을 더욱 흥미롭게 그려낸다. 위하준은 실종된 형의 흔적을 찾아 게임에 참여한 경찰 준호를, 정호연은 거칠게 살아온 새터민 새벽 역을 맡았으며 허성태는 새벽에게 배신을 당하고 조직의 돈을 잃고 부하에게 쫓기는 조폭 덕수 역을 맡았다. 특히 트리파티 아누팜은 외국인 노동자 알리 역을 맡았는데 악덕 사장의 횡포에 반발하다 큰 사고를 친 그는 선한 마음을 가진 청년으로 1화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부딪히는 전개 또한 끝없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돈을 중심으로 갖가지 사연들을 가지고 참가한 인물들은 돈 앞에서 사탄도 휴업을 선언할 정도의 악행을 선보인다. 그들의 모습은 자본주의에 찌들어 태어나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며, 이들의 악행이 돈이 없어서가 아닌, 인간이기를 포기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징어 게임'의 안이든 바깥이든, 돈이 존재하는 어떤 곳이든 광기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9월 17일 넷플릭스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