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해가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저녁을 먹으려다 우연히 본 뉴스에서 당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위가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이 보도됐다. 한창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단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인분을 먹는다는 것, 그 가혹 행위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양한 군대 내 폭력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수많은 이들이 알게 됐다. 극도로 폐쇄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침묵될 수 있는지, 조직이 개인을 어떠한 방식들로 짓밟을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지도 말이다.
지난 8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감독 한준희)는 군필자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실적 연출이 담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탈영병들을 잡는 체포조인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 일명 'D.P.'가 마주하는 다양한 사연들이 중점을 이루고 있으나 그와 더불어 군대 내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폭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폐쇄된 사회 속에서 가해자는 독재자로 군림한다. 못이 박힌 벽 앞에 후임들을 세워 의도적으로 밀치고, 눈앞에서 자위행위를 시키며, 음모를 불태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마치 아무 문제 없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이는 군대 사회 내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존재하는 피해자에게 지옥과도 같은 일상이다. 그 공포의 세계 속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병, 안준호", 그저 자신의 직위와 이름을 외치는 일이다. 끝없이 대항 불가능한 자신의 위치와 나약한 존재성을 확인할 뿐인 것이다.
이 끔찍한 광경을 사실적으로 완성하는 과정에는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있었다. 콤비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는 주인공 정해인, 구교환 이외에도 다양한 조연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내무반에서 안준호를 유일하게 감싸는 선임 조석봉 역을 맡은 배우 조현철의 연기력은 발군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가장 큰 내적 변화를 맞이하는 인물로 숨겨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총 6개의 에피소드 중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고 동시에 후반부 서사를 끌어나간다. 사람을 때리기 싫어서 어릴 적 유도 선수를 포기할 정도로 온화한 성품을 지닌 그는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끼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간성은 군대 내 가혹행위를 겪게 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구조가 변화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조리가 붕괴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아픔을 방관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가해자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방관자는 괜히 문제를 지적하는 조석봉을 비난한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방관자들의 이중성은 계속된다. 단체적인 괴롭힘으로 조석봉을 벼랑 끝으로 몬 부대원들은 조석봉을 사살할 수도 있는 체포 과정에 놓이게 되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를 추락 직전의 벼랑 끝으로는 내몰았으나, 방아쇠를 당기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모순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니 'D.P.'는 묻는다. 여기서 죄 없는 자, 아니 죄 없는 자라도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피의 복수를 마지막 보루로 선택한 그에게 과연 그 누구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D.P.'는 군대 사회를 넘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놓인 집요한 물음이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 모든 종류의 폭력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자문한다. 누군가에게 괴물이 되지 않았을지언정 괴물의 가해를 돕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의 아픔에 관한 '책임'이 없다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외칠 수 있냐는 질책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선은 무엇일까. 최선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이라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관심'이다. 1화에서 안준호는 선임인 박성우(고경표 분)의 나태한 태도에 휩쓸려 함께 술을 마시다 탈영병 신우석(박정우 분)을 놓치게 되고 그날 밤 그 탈영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아침이 되어서야 듣게 된다. 이후 체포하지 못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술자리에 간 것을 비밀로 하자는 박성우에게 안준호는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며 분노하면서 그의 얼굴을 때리지만 사실 그의 원망은 자기 자신에게 향해있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눈앞에서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관심을 제대로 가지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더 이상 늦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책임의 문제에서 완벽하게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모든 일이 벌어진 후 그저 의미 없이 허공을 향해 돌을 던지게 되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8월 27일 넷플릭스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