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속도전이다. 고3 호훈(신재휘)의 과외선생 토일(정수정)은 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필이 받아 뽀뽀하더니, 덜컥 임신하게 된다. 너무나 흔한, 혹은 절대 흔하지 않은 싱글맘, 십대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질 듯하지만 영화는 예사롭지 않은 가족 이야기로 진행된다. 낙태와 사회적 안전망을 이야기하는 청소년 계도 드라마가 아니다. 가정의 달에 공영방송 KBS에서 방송함직한 가족드라마이다. 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되는 최하나 감독의 데뷔작 [애비규환]이다. 물론 엄청나게 비참한 지경을 말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비튼 말이다. 아무래로 ‘아버지’이야기가 나올 듯하다.
대학생 신분에, 과외하는 학생과 연분이 생겨 아기를 가진 ‘토일이’의 선택은 무엇일까. 임신 5개월째가 되어서야 아버지(최덕문), 어머니(장혜진)에게 임신사실을 알리며, 결혼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런 폭탄선언의 경우 대부분의 부모가 보일 반응은 비슷할 것이다. 토일은 호훈의 부모님(남문철 강말금)에게도 사실을 알린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토일의 가족에게는 사연이 있다. 토일은 갑자기 대구로 내려가서 친부를 한번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제 친아버지(이해영)가 소동에 합류한다. “누굴 닮아서 이러니~”의 현장을 목도하며 축복받은 결혼식이 될지, 자의식 과잉의 싱글맘이 될지 그 결과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하며 힘겹게 돈을 모아 결혼하려는 청춘의 단계보다 훨씬 이전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애 아빠와 철부지 여대생이 덜컥 임신을 했을 경우,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최하나 감독은 ‘가족의 이야기’와 ‘콩가루 가족’이야기를 코믹하게 비틀어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걸그룹 f(x)의 크리스탈(정수정)과 장혜진, 최덕문, 이해영, 강말금, 남문철 등 얼굴과 함께 그 역할이 바로 떠오르는 쟁쟁한 조연진이 참여하며 소박한 가족의 거창한 가족 만들기 전쟁이 완성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배운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도, 학생들이 잘 따라 배워야할 선생님이라는 거룩한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 극중 캐릭터의 탁월한 선택, 그리고 감독의 욕심 부리지 않는 소박한 연출로 영화는 ‘한여름 밤의 가족드라마’를 완성시킨다.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이다. 그들의 사랑이 깨어지거나 그들 가족의 불행해질 리는 절대 없을 것 같다. 제목만 ‘애비규환’이지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어미극락’이다.
참, 정수정이 연기하는 ‘토일’이 이름은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태어났다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KBS [독립영화관]은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밤에 방송된다. ‘금토’ 독립영화관이라는 소리이다. 절대 방송시간 헷갈리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