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옮겨와 우리가 보았던 순간들, 만졌던 모든 촉감을 느낄 수 있다면, 인류는 그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게 될까.
영화 '레미니센스'(감독 리사 조이)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도시 절반이 바다에 잠긴 미래에 침몰 도시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 경험하게 해주는 사업을 하는 닉(휴 잭맨 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조롭게 사업을 운영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온 고객 메이(레베카 퍼거슨 분)를 만나게 되고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메이는 그와 미래를 계획하던 도중 사라지게 되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닉은 그의 기억 속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며 과거의 향수에 중독된다. 메이에 대한 집착을 떨쳐낼 수 없었던 닉은 직접 메이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사람들의 기억을 들여다보던 중 잔혹한 진실을 알아가게 된다.
'레미니센스'는 디스토피아 관점에서 본 SF영화가 지닐 수 있는 상상력을 잘 꾸려낸 작품이다. 작품 속 과거의 기억에 중독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다리를 잃기 전 힘차게 뛰어다니고 강아지와 놀았던 기억을 회상하는 군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중독적으로 기억을 찾는 여성 등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맛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애잔하면서도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과거의 향수에 중독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재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재벌들의 경우에는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그 기억을 완전한 실제로 만들어버리는 자본력이 있다는 점이다. 세트를 짓고 배우를 고용해 기억을 계속해서 반복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빈곤층과는 다른 종류의 연민이 느껴진다. 결국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어떠한 가치도 대항할 수 없다.
'레미니센스'가 시사하는 바 중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과거를 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는 과거에 목매인 사람들에게 '한심하다' 혹은 '빨리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과거를 보는 것에서 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이는 작품 초반부에서 메이가 잃어버린 '열쇠'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사건을 의뢰하는 메이에게 닉은 '인상에 남지 않은 것은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에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인생은 불평등하고, 소중한 것은 잃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열쇠를 잃어버리기 전에는 우리가 그 열쇠 없이는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만, 열쇠가 없어진 후에는 그 열쇠가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기억일수록 또렷하게 기억나는 현상을 일컫는 '레미니센스'는 한마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들을 돌아보며 알게 되는 소중한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때로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구원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전언도 담겨 있다. 과거를 재현하는 기술이 축복일지 재앙일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에 담긴 사랑만큼은 명확한 축복이다. 8월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