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온 뒤 땅패임이나 땅꺼짐 현상은 일반적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뉴스에서는 끔찍한 지구 지표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 등장했다. ‘싱크홀’ 현상이다. 국립국어원에선 ‘땅꺼짐’이라고 제시한다. 과학적으로는 지하암석이 용해되거나 기존의 동굴이 붕괴되어 생기는 현상으로, 특히 안의 지하수가 빠지면서 땅굴의 천장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땅이 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지하수 고갈, 세일가스 시추 증대 등의 이유를 덧붙이기도 한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본 모습은 직경 수 미터, 때로는 수십 미터이고 깊이도 그 정도에 달한다. 자동차 몇 대가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꺼져버린 도로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모습을 봤을 것이다. 이런 재난상황을 영화인이 그냥 넘어가긴 힘들었을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싱크홀이 최대규모로 벌어진다며? 외계인의 습격도 아니고, 도시개발자의 야욕도 아니라 그냥 내가 사는 우리 집이 어느 날 땅 밑으로 수백 미터 꺼져버린다면? 영화 [싱크홀]이 그런 상황을 그린다.
김성균은 어렵게 돈을 모아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한다. 강남이나 역세권 대형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집’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빌라의 5층이다. 비가 내리는 날 이사를 하게 되고 이런저런 이웃을 만나게 된다. 새집의 기쁨도 잠시. 거실 바닥이 기운 것 같고, 문짝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부실공사인가? 직장동료들이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날, 순식간에 집이 땅속으로 내려앉는다. 초특급 승강기라도 탄 듯이. 이제 통째로 꺼져버린 빌라 더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필사의 탈출을 시작한다. 지상 500미터 위로!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지식으로 영화를 상상하는 경우가 있다. [타워]의 김지훈 감독의 신작이란다. 재난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의 솜씨가 기대된다. 앗, 그런데 [7광구]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왠지 불안하다. 차승원과 이광수가 등장한다. 단순한 재난드라마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같은 강력한 한방을 가진 휴먼드라마인가?
영화 초반에는 ‘내집 마련’의 소박(!)한 꿈을 이룬 가장의 행복한 모습과 소시민적 걱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마련한 내집인데! 소시민 김성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더니, 영화는 곧장 재난상황으로 직행한다. 의외로 진행이 빠르다. 이제 달라진 상황에서 캐릭터들이 주어진 각자의 역할을 위해 달려간다. 차승원과 서먹서먹한 관계의 아들, 이광수와 티격 대는 인턴 신입사원, 김성균과 사라진 아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빌라 입주민들이 드라마를 조금씩 채워 넣는다. 물론, 그런 땅 밑 빌라에서 필사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 지상에서는 구조대의 헛된 노력이 이어진다. 다행인 것은 [터널]에서의 파리떼 같은 언론 모습은 없다!
오래전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워링] 시절의 정통재난극에 녹아든 인간드라마를 펼치면서, 이 영화는 독특하게 ‘코믹함’을 놓치지 않는다. 차승원과 이광수라는 걸출한 희극 연기자와 김성균, 김혜준의 적절한 추임새 등이 조화를 이룬다.
500미터 땅 속이라니? 깜깜하지 않을까? [죠스]를 만들 때 “세상에 이렇게 큰 상어가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랬단다. “영화가 시작되고, 일단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런 건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싱크홀’에 빠진 이상,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지금 무엇을 생각하리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할머니(정영숙)의 마지막 모습이다. [타이타닉]에서 침몰하는 배안에서 침대 위에서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부부 같은 느낌이었다. 참, 이 영화의 교훈. ‘싱크홀’에서는 살아날 방법만 생각하라! ▶2021년 8월 11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