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영화판 연출부에서 고생하며 자투리 필름으로 동생 류승범을 데리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완성시켰던 류승완 감독이 20년을 충무로를 지키며 판을 점점 키워오더니 이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북 합작’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의 급박했던 외교탈출극을 담은 영화 [모가디슈]이다. 신작 [밀수]가 크랭크인 되면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취재진을 만나 화상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모가디슈]가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개봉되었다.
▶류승완 감독: “코로나 4단계에 올림픽까지.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극장을 찾아주시고 좋은 관람평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하던 90년대 초는 한국영화가 대중에게 인기아이템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도 더 힘든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영화를 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숫자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다.”
▷ 코로나로 개봉이 많이 늦춰졌다고 알려졌다. 여름 최성수기 텐트폴 영화를 내놓은 소감이 어떤지.
▶류승완 감독: “작년 개봉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후반작업을 거쳐 올 설에 맞춰 개봉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영화 특성상 여름 개봉이 맞을 것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 충무로가 비상이 걸렸다. 나는 경쟁을 싫어한다. 아직도 경쟁문화에 적응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봐 주시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애초부터 대단한 스코어를 만들자는 야심 같은 것은 없었다. 손익분기점만 넘겨 다음 작품 만들자는 그런 기조로 만든 영화이다. 저희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한국영화를 책임지는 것 같이 비쳐진다.”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 군함도 때문에 모가디슈를 만들 수 있었다
▷ 전작 [군함도]가 큰 기대 속에 개봉되었지만 논란이 많았다. 이번 작품은 어떤가.
▶류승완 감독: “[군함도] 이후에 특별히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졌다기보다는 소재와 배경이 끌렸다. 전 치밀한 사람도 아니다. 제 인생도 하나 계획 못하는데 뭘 하겠는가.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 이 시점에 이 작품을 만든 것이다. [군함도]를 만들면서 몹씬(대규모 군중등장 장면)과 심도 깊은 장면을 연출해 봤기에 이 영화를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영화를 보면서 국가는 힘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서방 국가는 비행기를 동원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했다. (영화에서 서방국가는 특별기 등을 동원해 자국민을 철수시키는데 한국과 북한은 그러질 못한다. 1991년 아프리카 모가디슈 상황이다!)
▶류승완 감독: “이런 영화를 만들 때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디에 포커싱 하느냐 고민하게 된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잘 나갈 수 있다. 2시간 영화 안에 내가 전하고자고 하는 것을 담는 것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다. 거대한 이야기를 거대하게 다가가기 보다는, 관객에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제 능력으론 벅차다. 관람하시는 분들이 그런 것을 생각해 주신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봤다.”
▷ 1991년 소말리아에서 근무한 강신성 대사는 만나봤는지, 어떤 조언을 들었는지.
▶류승완 감독: “제가 이 작품 하기로 하고서 덱스트쪽 기획하는 사람이 꾸준히 만났고, 저도 만났다. 강 대사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내전상황에 대해 잘 아는 외교관을 많이 만났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사(祕史)가 많았다. 외교관, 북한전문가, 종군기자들을 두루두루 만났고, 다각도로 자료조사를 했다. 영화가 끝나면 스크롤이 올라갈 때 그분들 이름이 나온다. 강신성 대사뿐만 아니라 8,90년대 아프리카에 파견 나갔던 분들, 중동의 분쟁지역 외교관들을 만나 많은 말씀들었다. 이게 모가디슈에서 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의 많은 이야기가 섞여 있다. 외교관분들이 이 영화 보시고 좋은 반응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 류승완 스타일
▷ 영화 초반에 모가디슈 공항에 도착한 조인성이 담배를 피우고는 별모양을 그린다.
▶류승완 감독: “아 그 장면은 그냥 재밌게 찍은 것이다. 담배꽁초로 모양을 만들고 난데없이 거북이가 등장하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차량이 다 빠져나가고 대사관 사람들은 안 나타나고, 그 정도 담배 피울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기다리며 별짓 다하잖아요. 시간의 흐름을 영화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강 참사관(조인성)이 귀엽게, 무료하게 시간 보냈다는 표현이다.”
▷ 줄곧 액션영화로 영화팬의 감성을 사로잡았고, 드라마의 깊이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나.
▶류승완 감독: “여전히 어렵다.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하고 훔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조금씩 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영화라는 것이 신기한 것이 본인의 경험, 체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는 것을 경험이 쌓이니까 알 것 같다. 제가 보고 싶은 것들, 그것을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면 좋겠다. 그런 원칙은 변함없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장면, 좋은 이야기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다.”
▷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방탄차량을 만들 때, 책으로 얼기설기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가. 최선의 방법인가?
▶류승완 감독: “그 장면을 찍을 때 고심을 했다. 실제 정부군과 반란군 양쪽에서 오인사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자기들이 모르는,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 나타나면 총을 쏴댄다. 그 총알세례를 뚫고 대사관 앞 50미터 지점까지 간다. 그게 마지노선이다. 아마 그 선을 넘어가면 국가 간 분쟁이 되는 모양이다. 그 난리통에 한 사람만 희생을 당하는 장면을 표현하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때 상황을 모르고 보시는 관객 분들에게 설득력을 주기 위해 고안했다. 현실은 훨씬 영화 같은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 AK소총은 반동이 심하고 훈련도 덜 된 사람들이라 명중률도 낮다. 자료를 보니 전화번호부 한 권 정도의 두께도 관통하기 어렵다더라. 책으로 방탄장치를 하자고 북한대사가 아이디어를 낸다. 아마 그들도 군 생활을 했을 것이고, 우리도 군생활 경험이 다들 있을 테니 그런 장치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실제 그때는 이미 모가디슈가 무정부상태가 되어버렸고, 어디에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니 선택의 폭도 그리 크지 않았다.”
▷ 당시 급박한 남북외교전 상황에서 안기부의 강참사관 역할이 컸을 것 같다. 조인성을 캐스팅한 이유는.
▶류승완 감독: “당시 모가디슈에는 안기부에서 파견된 참사관은 없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는 많이 갔다고 하더라. 실제 주재국에서 대사끼리 접촉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 아래 사람, 참사관들이 접촉을 많이 한다. 다른 대사관에서 열리는 만찬 같은 행사에 참석하는 등 물밑 교류를 많이 했다고 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안기부(조인성)와 보위부(구교환) 인물을 등장시켰다. 극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에 공관이 설치된 것은 유엔 가입 투표권 문제도 있었지만 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의 체제 대립 영향도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우방국에게 대사관 확대를 요청한 것이다. 냉전시대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조인성은 대본보다 훨씬 생생하게 인물을 살려냈다. 영어대사도 그렇고, 순간순간 나오는 엉뚱한 반응들이 좋았다. 우리가 조인성을 떠올릴 때 예상하는 것을 벗어나는 엉뚱한 유머와 역할이 큰 공을 세웠다.”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 아프리카에서 대작영화 찍기
▷ 한국영화 최초로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대규모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준비과정이 만만찮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 “할 수만 있다면 소말리아 모가디슈 현지에서 찍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지금도 여행금지국가로 묶여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처음에는 케냐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프리카는 굉장히 넓다. 거기 사는 분들이 지역 차가 크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피부색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이목구비가 멋있다. 룩이 그렇다는 것이다. 케냐 사람과 비슷했다. 건축물도 비슷했다. 그런데 촬영 들어가기 얼마 전에 그곳에서 쇼핑몰 테러가 일어났다. 안전문제도 있고, 촬영장비 수급, 인력 문제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안으로 아예 남미 가서 찍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다가 모로코가 떠올랐다. 같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블랙호크다운]을 촬영했던 곳이다. 유럽이 가까워서 장비 수급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케냐는 도로 진행방향이 우리와 반대였다. 차량이 중요한데 우리가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로코의 [블랙호크다운] 촬영했던 곳을 가봤다. 영화에서 본 것이랑 완전 딴 판이었다. 할리우드 애들이 전체를 세팅해서 영화를 찍었던 것이다. 그냥 세트에서 찍지 왜 여기까지 와서 찍었을까 그랬다.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소말리아에서 근무했던 분이 현장을 한번 왔었는데 보고는 ‘이곳이 최적의 장소’라고 말씀하시더라. 카체이스 장면을 찍었던 카메라 드라이버가 원래 파일럿이었는데 1992년에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있었다고 하더라. 그 양반도 자기가 있었던 모가디슈와 비슷하다고 말하더라. 우리가 헛짓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작팀이 고생했다. 프로듀서랑 외국어 잘하는 제작부가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었다. 그리고 현지 매니지먼트를 한 마호멧의 도움이 컸다. 이 분은 리들리 스콧, 폴 그린그래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과 작업했던 분이다. 모로코에서 찍는 영화는 이 사람이 다 한 것이다. 약간 ‘홍반장’ 캐릭터이다. 공항이든 시장이든 어디 가든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큰 도움을 받았다. 약속하지 않은 곳에 갔을 때도 쉽게 섭외를 성사시켰다. 영화를 찍을 때 안 되는 게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요즘 편찮으시다는데 모하메드 형님 보고 싶다.“
▷영화 찍으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류승완 감독: “드론으로 찍은 장면이 많다. 바닷가라서 갈매기가 그냥 쏴~악 하고 날아든다. 애들이 성격이 이상해서 자기들 구역에 낯선 비행물체가 나타나면 달라든다. 전혀 예상 못했는데 갈매기들이 보조출연한 셈이다. 모로코엔 또 왜 그리 개가 많은지. 들개들이 몰려다니는 게 무섭더라. 갈매기가 사람을 공격하듯이 낮게 날아오더니 탁 치고 간다. 저도 한번 당했는데 입에 물고 있던 뭘 탁 떨어뜨리고 갔는데 무서웠다. 쉬운 촬영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시 그곳에서 찍을 거냐고 묻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갈 것이다.”
▷ 요즘 영화계 추세가 극장 대안으로 OTT행이 각광받고 있다.
▶류승완 감독: “나는 극장에서 상영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생의 한 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저한테 특별한 공간이다. 힘들 때 꿈을 꾸던 곳이었고, 꿈을 이루게 한 공간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 그곳이다. 단순히 스펙터클의 차이가 아니다. 큰 화면뿐만 아니라 인물의 클로즈업, 눈동자를 통해 반사되는 눈빛, 세세한 소리들, 마치 자기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모기 소리, 마지막 장면에선 내가 비행기 안에 있는 것 같은 소리. 이런 것은 핸드폰으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김윤석 선배도 이건 스트리밍으로 보낼 수 없다고 하시더라. 정말 흥행을 생각했다면, 시기도 그렇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겠지만 이건 관계의 문제이다. 극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극장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한국인의 밥상, 깻잎으로 대동단결
▷ 1991년 당시 급박한 실제상황을 영화로 옮겼다고 하는데, 북한대사관 사람들의 상황은 어땠는지.
▶류승완 감독: “그때 한국대사관에는 루마니아 대사도 같이 머물다가 함께 탈출했었다. 북한대사관은 8번 정도 공격을 당했다. 당시 내전 상황을 지켜본 소말리아 방송국 사람이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신의 경험담을 수기로 낸 적이 있는데 당시 상황은 끔찍했다. 북한대사관이 거듭 약탈당할 때 직원들이 끔찍한 일을 당했었다고 한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시체들로 방어벽을 치고 총을 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다 표현하면 너무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에는 그것 말고도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인 순간이 많다. 그래서 뺄셈이 중요했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한 것은 어떤 시각으로 그 때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다 보여주다가는 원래 포커스를 맞추려고 했던 것이 뭉개질 것 같았다. 내가 다큐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사실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사실을 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계산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난 수학을 못한다.”
▷ 대사관에서 모두 한자리에서 때늦은 만찬을 하는 장면에서, 깻잎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감독: “깻잎 반찬은 영화를 준비하며 만났던 해외공관 분들이 하신 이야기에서 따왔다. 실제로 다른 지역의 대사관분들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어딜 가나 한식당들이 있지만 그때는 씨앗을 챙겨 직접 가꾸고, 반찬을 해 드셨단다. 그리고, 밥 먹는 장면에서는 할머니와의 기억이 많이 작용했다. 영화에서 김치를 앞에 두고 촛불 때문에 제대로 못 집으니, 이쪽 사람이 보지도 않고 그릇을 썩 밀어준다. 한국인의 밥상은 그렇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다. 손만 뻗으면 다 닿는 곳에 있지만 그룻 위치도 바꿔주고 그런다. 그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 다 있었다. 영화로 완성된 것은 김소진 배우의 시선처리, 박명신 배우의 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이 완벽했다. 현장에서 찍을 때부터 좋았다.”
*** 인터뷰답변 중에 할머니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류 감독은 중학생때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 승범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길러졌다. 어렵게 자라면서도 영화, 액션영화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다. ***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
● 류승완 감독과 배우들
▷ 독립영화계의 총아에서 어느새 한국영화의 대들보,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어 버렸다.
▶류승완 감독: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이렇게 된 게 아니다. 만들다 보니 예산이 커진 것이다. 어느 감독이 손익분기점 높은 것 만들고 싶겠는가. 그냥 동네에서 찍고, 서로 깔깔 거리면 되지. 규모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좋은 점이 있다. ‘블록버스터 감독’ ‘천만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에는 거부감이 생긴다. 그런 것을 지향해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 허준호, 김윤석, 조인성, 구교환.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갑이다.
▶류승완 감독: “허준호 선배는 김지운 감독은 [인랑] 등장 장면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여태 보아왔던 모습과 너무 달라보였다. 이분이 그냥 내 카메라 앞에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나서 이런 소재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대본이 나오기도 전에 ‘합시다’해서 너무 신이 났었다. 허준호 선배님은 해외 촬영 경험이 많아 걱정을 해주셨다. 현장에서 잘 이끌어주셨다.”
“김윤석 선배가 그동안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의 연기도 좋아하지만 [완득이]와 [거북이 달린다]에서의 서민적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뭔가 겁에 질린 듯한 외교관 모습을 한다면 끌릴 것 같았다. 만나서 저의 목표와 방향을 말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촬영현장에서 굉장히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셨다. 스케줄에 쫓길 때에도 ‘더 찍어라’,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편했다. [미성년] 연출 다음이어서인지 호기심이 굉장했다. ‘이 렌즈는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이냐’며 영화학도처럼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고 그랬다. 유머도 있고. 즐거웠다.”
“조인성씨의 인성은 말할 것도 없고, 구교환은 영화의 신선도를 싹 올려주었다. 이들의 조합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모여서 멋진 앙상블을 이루었다. 서로 상대를 배려해주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제가 신작 촬영 중이어서 [모가디슈] 홍보에 늦게 인사드려 죄송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열심히 만들겠다.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라고 마무리 인사를 했다.
[모가디슈]라는 대작을 개봉하자마자 류승완 감독은 바로 다음 작품에 뛰어들었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등 쟁쟁하고도 신선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 [밀수]이다. 어떤 영화로, 언제 우리 곁에 돌아올지 기대된다. 분명한 것은 그 때가 되면 코로나가 종식되고, 극장에서 맘 놓고 팝콘 먹으며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가디슈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유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