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는 초콜릿 이름도, 커피 품종도 아니다. 아프리카 동쪽 코뿔소의 뿔처럼 튀어나온 나라, 소말리아의 수도이다. 이곳 앞바다에서 ‘아덴만 여명작전’이 펼쳐진 것은 2011년이었고, 톰 행크스의 ‘캡틴 필립스’가 납치된 것이 2009년의 일이다. 어쩌다 해적들의 땅, 바다가 되었을까. 이보다 20년 전, 1991년의 소말리아에서 생긴 일을 만나볼 수 있다.
● 소말리아 이야기
지정학적으로 아랍권인 ‘소말리아’ 지역은 19세기 들어 영국-이탈리아 등의 식민지가가 되었다가 1960년 독립했지만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웃 나라(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하고, 곧바로 사분오열 내전이 벌어진다. 종파간, 부족간 다툼에 알카에다까지 합세하며 엉망진창의 국가 아닌 국가, 지구상 최악의 위험지역이 된다. 1990년 연말 무렵,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로 진격하면서 장기집권 독재자 시아드 바레의 정권이 몰락할 시점의 이야기이다. 당시 이곳엔 남과 북이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었다.
● 한반도 이야기
1945년 해방되고, 1948년 건국되었지만 오랫동안 남도 북도 UN에 가입하지 못했다. 남과 북은 반백년동안 서로를 괴뢰국가로 칭하며 극한대치를 이어왔다. UN가입은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나라’에게는 문호가 활짝 열려있다. 하지만 ‘남’의 가입은 북(소련,중공)이, ‘북’의 가입은 남(민주진영)이 가로 막는 기이한 외교전이 펼쳐진다. UN의 대원칙 ‘상임이사국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른바 3세계 비동맹운동이 급부상하면서 지지세력, 우군확보라는 외교전이 본격화 된 것이다. 당연히 아프리카는 외교관에게는 ‘위충진명’(爲忠盡命)해야 할 땅이 되었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의 혁혁한 성과를 내세우며 북방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때였다. (대사관에는 노태우 대통령 사진이 붙어있다) 소말리아 내전당시 소말리아 정권은 부정부패비리의 정점에 서 있었다. 북은 남보다 먼저 아프리카에 외교전을 펼쳤기에 과연 소말리아가 누구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였다.
● 모가디슈 이야기
영화는 소말리아의 불온한 정정(政情)과 남북한이 펼치는 첨예한 ‘외교전’의 실상을 절묘하게 섞는다. 한국은 ‘88올림픽’ 비디오테이프와 호돌이 인형, 그리고 (때로는) 안기부 공작금을 적절히 뿌리며 접근하였고, 북한은 북한대로 필사적 외교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때 반군이 모가디슈를 전격 접수하면서 이제 무법천지, 무정부상태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28년간 외교관생활을 한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몇 안 되는 공관원을 보호해야한다. 그 와중에 사지에 내몰린 북한 공관원까지 더해지면서 분단이후, 미증유의 ‘남북합작’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필사의 탈출을 펼쳐야하는 것이다.
영화 [모가디슈]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1991년 1월에 벌어진 모가디슈 주재 각국 외교관들의 필사의 탈출을 다룬다. 부자나라, 강대국들은 전용기를 보내며 신속하게 공관원과 자국 국민을 실어 나른다. 불쌍하기는 한국과 북한이 매일반이었다. 한국의 강신성 대사는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북한 김용수 대사를 만나게 되고, 남쪽보다 더 딱한 처지를 전해 듣게 된다. 북한대사관은 이미 무뢰배들에게 7~8차례 강도질을 당한 상태였단다. 강 대사는 설득했고, 그렇게 남쪽 대사관에서 3박4일은 함께 지낸 뒤 이탈리아 대사관의 도움으로 이웃 케냐 몸바사 공항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류승완 이야기
류승완 감독은 이런 ‘실제 이야기’속에서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책으로 덧댄 장갑차량이 만들어지고, 요원 조인성의 어설픈 전향 작전이 더해지는 것이다. (강신성 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백기를 들고 나선 것이 아니라 태극기를 들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들어갔었다고 회고한다)
TV드라마에서 ‘사극의 창의성’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것처럼, 이런 영화에서 어디까지 진실인지 캐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3박 4일 남과 북이 함께 하던 그 때, 한 밥상에서 깻잎 반찬을 나눠먹던 그 장면만큼 한민족임을 느끼게 하는 장치가 또 어디 있으리오.
오랫동안 남북 외교전에서는 북한 외교관이 불법으로 ‘마약거래’를 했다거나, 유학생을 포섭해서 간첩으로 만드는 전진기지로 삼았다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류승완 감독은 그런 흑역사 속에서 미담을 발굴해낸 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공감을 이끄는 정도에서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조인성이 연기한 ‘훈련받은 요원’에게 관심이 간다. 최악의 순간에 가장 적절한 판단을 신속하게 내는 인물이다. 그 시절 그 많았던 외교공관의 요원들이 가지고 있을 비밀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 발굴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감독:류승완 출연: 김윤석,조인성,허준호,구교환,김소진,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2021년 7월 28일 15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