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한승훈 감독의 ‘이쁜 것들이 되어라’가 방송되었다. 이 영화 독립영화 맞다. 작년 이맘 때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작품으로 ‘들개’(김정훈 감독), ‘보호자’(유원상 감독)와 함께 기자시사회를 갖고 영화 팬을 찾았었다.
‘이쁜 것들이 되어라’는 사랑스런 작품이다. 남자주인공 한정도(정겨운 분)는 한 마디로 ‘찌질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위인이다. 비록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시준비생이지만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초등시절, ‘타이거 맘’의 표본이라고 할 엄마의 성화에 ‘공부, 공부, 또 공부’에 내몰린다. 물론, 주인공이 되돌아보는 회상 씬은 조금 다르다. 어린놈이지만 예쁘고, 섹시하고, 짧은 스커트에 가슴골 깊이 파인 과외선생님에 현혹되어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고 다행히 서울대에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소망을 이룬 것처럼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영화는 급진전. 이제 고시원에 붙박이가 된 처량한 한정도의 찌질한 일상을 보여준다. 사시만 10년째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런 한정도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돈 많은 여자! 약혼자 진경(이지연 분)은 남친이 떡하니 사시에 합격하여 판검사 되기만을 바라고 10년 째 물심양면 스폰서가 되어준다. 하지만, 엄마의 등살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자신의 삶이 없는 듯하다. 게다가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정인기). 그 옛날부터 보란 듯이 두 집 살림을 하던 아버지는 말기 암으로 병원에서 시한부 삶을 사신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김치찌개를 한가득 해놓고, 비닐에 한 팩 한 팩 고이 사서 냉장고에 수북이 쌓아둔다. 정겨운은 이 처량한 삶에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할 듯하다. 물론, 우유부단 캐릭터답게 끝까지 주저주저 우물쭈물하며.
신림동 고시촌에 유폐되어 육법전서를 죽도록 외는 사람은 많다. 기약 없이 오랜 세월을. 아마도 이들도 자기 집안에서는, 자기 고향에서는 한 때 신동, 수재 소리 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수재는 어떻게 탄생할까.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교육열에 들뜬 이 땅의 어머니들의 열정(치맛바람)에 기인할 것이다. 적어도, ‘이쁜 것들이 되어라’의 정겨운의 경우는 그러하다. 그런 어머니가 부재한 순간부터, 김치찌개만 남은 상황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가 남자답게, 아니 자의식 가진 사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고시원의 누군가가 ‘엄마의 김치찌개’에 손을 댔을 때, 무지 분노한 그 때 뿐이다.
한승훈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투영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엄마는 항상 김치찌개만 끓여주셨단다. 그리고 한 달 내내 먹을 김치찌개를 미리 해두었다고. 한 감독은 이 이야기를 자신의 단편영화 ‘엄마의 커다란 김치찌개’(10)로 완성시켰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그 ‘엄마의 김치찌개’는 등장한다.
한 없이 위축된 사시준비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겨운의 연기는 영화 보는 내내 관객을 주저앉힐 정도이다. 그런데 쓰러지기 전에 잊지 않고 등장하는 정인기와 임현성의 발랄한 애드리브는 가히 비아그라급이다. 그리고 윤승아와 이지연의 다른 듯 같은, 묘한 들이댐은 이 영화의 결론을 궁금하게 만든다. 결국 정겨운은 사법연수원 가느냐고? 그래서 스폰서와 결혼 하냐고?
냉장고에 가득한 김치찌개를 다 끓여먹어도 정겨운은 사법시험 패스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지연의 돈과 윤승아의 응원이 있다면 끝까지 도전해 볼 듯하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두 집 살림 안 하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by 박재환 201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