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색, 계>가 제목 속 ‘쉼표’로 철학적 사유를 끌어냈다면, 안상훈 감독의 <순수의 시대>는 제목부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지만, 영화는 치명적이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함몰되며 제목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세 남자가 있다. 정도전의 신임을 받는 강골 무사 김민재(신하균), 왕의 부마이자 패악질을 일삼는 그의 아들 진(강하늘), 그리고 왕좌를 향한 야심에 불타는 이방원(장혁)이다. 이들은 기녀 가희(강한나)라는 공통분모로 얽히며 각자의 목적을 위해 칼을 잡거나 옷고름을 푼다.
사극에 처음 도전한 신하균은 완벽한 무인의 몸을 만들었지만, 그 황홀한 복근은 전장이 아닌 정사 장면에서 주로 빛을 발한다. 가희 역의 강한나는 세 남자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도전적인 연기를 펼친다. 감독은 가희를 통해 이방원의 야심과 김민재의 순정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려 노력하지만, 가희라는 인물을 과하게 소모하면서 영화의 톤은 핏빛이 아닌 핑크빛으로 변질된다.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대로 ‘무인의 순수한 애정’으로 보려면 조선 초의 정치적 대결 구도라는 사전 정보는 지워야 한다. 권력과 사랑을 얻기 위한 인물들의 몸부림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 역설적으로 ‘순수’는 퇴색하고 만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박재환.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