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 밤에 방송되던 'KBS 독립영화관'이 새해 들어 화요일 밤에 시청자를 찾는다. 내일(20일) 밤 12시 30분에는 신연식 감독의 2010년 작품 ‘페어 러브’가 방송된다. 오십이 넘도록 연애 한 번 못해 본 남자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친구가 임종 때 부탁한 딸을 찾게 되면서 펼쳐지는 일종의 러브스토리이다. 쉰 노총각은 안성기가, 철없는 스물다섯 아가씨 역은 이하나가 맡았다.
안성기(형만 역)는 친구의 임종자리에서 부탁을 하나 받는다. 하나 뿐인 딸 이하나(남은 역)를 좀 챙겨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이 친구는 자신의 돈을 떼먹은 사기꾼이었지만 죽는 자리에서의 부탁이니 매몰차게 뿌리칠 수도 없었다. 부탁받은 친구의 딸은 스물다섯의 풋풋한 대학생. 빚쟁이 아버지 때문에 어릴 적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해봤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고생한 친구분을 마주하게 되면 또 다른 맘고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가 않은 여자일 것이다. 안성기는 카메라 수리점 사장이다.
안성기는 하루 종일 점포-라는 표현이 어울릴 가게-에서 고장 난 카메라를 붙잡고 세월을 보낸다. 카메라를 분해하고, 자잘한 부품과 씨름하며 곧 내다버릴 뻔 한 명품카메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필름카메라일 터이고, 단종된 모델이 태반일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나이는 쉰을 훌쩍 넘었고 결혼도 못했다. 아니 결혼만 못해 본 것이 아니라 하는 품새로 보아 변변찮은 연애도 못해 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연애를 하게 될 남자가 그 여자의 아버지뻘이라면 분명 그 남자는 재벌이고, 여자는 통통 튀는 매력을 가졌을 로맨틱코미디일 확률이 많다. 하지만 ‘페어 러브’는 그런 식상한 연애담을 벗어난다. ‘지지리 궁상’에 어울리는 연애를 하게 된다.
안성기는 형 집에 얹혀살다가 눈칫밥에 질린다. 그래서 자신의 가게 한쪽에 세간을 마련하여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이하나는 서툰 방식이지만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해 주는 아빠친구/아저씨/노총각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인들이 다 겪게 되는 토닥임의 시간을 지나 완벽한 사랑을 이룰 수가 있을까. 나이든 사람에게는 미안함이 없을 정도로, 어린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장난이 아님을 확신시켜줄 수 있을까.
신연식 감독의 ‘페어 러브’는 흔치 않은 사랑을 담담하게 영화에 담는다. 안성기의 연기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영민이 아니라 ‘성 리수일뎐’의 리수일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 은근히 빠져들어 끝까지 보게 되었다면 전적으로 안성기의 애처로운 노총각 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하나의 대책없는 연기와 카메라점포의 조역들도 멋진 연기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유인나가 안성기의 조카의 여자친구로 아주 잠깐 출연한다.
KBS 독립영화관은 매주 화요일밤 12시 30분에 KBS 1TV에서 방송된다. 극장에서 놓친 ,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독립/인디/예술/단편영화들이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