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의 1958년 작 <현기증>이 고소공포증을 가진 형사의 미스터리를 다뤘다면, 이돈구 감독의 <현기증>은 한 여인의 찰나적 신체 현상이 평온한 가정을 어떻게 처참하게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지독한 비극이다. 전작 <가시꽃>으로 주목받은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가족 유대감의 허상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강원도 화천의 전원주택을 배경으로 엄마 순임(김영애), 큰딸 영희(도지원) 부부, 막내딸 꽃잎(김소은)이 살아간다. 어렵게 얻은 아기의 탄생으로 활기가 돌던 집안은 순임이 아기를 씻기다 현기증으로 쓰러지며 아기를 잃는 사고가 발생하자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이후 집안에는 죄책감과 방향을 잃은 분노가 감돈다. 남편은 고립되고 아내의 신경은 날카로워지며,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막내딸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 사이에서 죄의식을 은폐하려던 엄마의 광기는 영화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이돈구 감독은 네 명의 캐릭터를 통해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서로에게 짐이 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효율적으로 풀어낸다. 가족은 서로 손을 내밀면 짐을 덜 수 있는 관계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불안과 절망에 갇혀 그 기회를 상실한다. 김영애의 광기 어린 열연과 김소은의 절망적인 연기는 관객을 현기증 나는 파멸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영어 제목 'Entangled(얽힌)'가 암시하듯, 비극의 출발은 하나였으나 여러 갈래로 증폭되며 가족을 옥죄는 과정이 서늘하게 그려진다. (박재환.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