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의 이해준 감독이 내놓은 <나의 독재자>는 1972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대역을 준비했던 무명 배우의 실화 같은 모티브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폐기된 후에도 스스로를 '수령'이라 믿으며 반쯤 미쳐버린 리어왕처럼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정치 풍자극이 아니다. 아들에게만큼은 최고이고 싶었으나 일생일대의 배역을 허망하게 놓친 뒤 좌절한 아버지와, 그 광기 어린 그림자 아래서 상처 입으며 자란 아들 태식(박해일)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심리극에 가깝다. 배우 설경구는 김일성 그 자체를 연기하기보다, 무명 연극인이 대역을 완벽히 해내지 못한 아쉬움과 아들을 향한 미안함이 뒤섞인 ‘그 시절 아버지의 회한’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영화는 산업화 시대의 가부장적 폭압 아래 민주적 결핍을 겪으며 자란 아들 세대의 그리움을 태식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주변 인물인 여배우 캐릭터를 통해 주체적인 삶의 결정권을 강조하며 남북 간의 블랙코미디를 부성애와 가족의 소중함으로 승화시킨다. 비록 후반부 청와대 리허설 장면의 즉자적인 반응이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기지만, 무명 배우가 품었을 '거위의 꿈'을 처절하게 보여준 점은 인상적이다. 국가 정상의 대역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시대의 비극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럼에도 남겨진 사랑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박재환.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