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The Planet of the Apes)은 꽤 족보가 있는 영화이다. 1968년에 세상에 나온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오리지널부터 시작하여 속편도 여러 편 제작되었고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21세기 들어서는 팀 버튼 감독이 리메이크 작품도 내놓았다. 그리고 2011년에 ‘리부트’라는 최신 프랜차이즈 상품이 만들어졌고 이번에 그 두 번째 작품이 극장에 나왔다. 이제 똑똑한 유인원을 만나기 위해 찰톤 헤스톤처럼 우주선 타고 시간의 뒤틀림을 겪으며 먼 미래의 지구에 착륙할 필요는 없다. 최신 의약품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물론, 충분한 임상실험이 없다보니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는 있다. 이번 프렌차이즈 제품처럼 인류, 혹은 유인원의 멸종을 가져올 만큼 위험한!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인류, 유인원과 싸우다
그 날 이후 10년. 인류는 ALZ-113바이러스에 의해 거의 전멸하게 된다. 면역체계로 살아남은 인류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절망적인 생존을 이어간다. 그리고 금문교 너머 무성한 숲에서는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 무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두 종의 만남은 새로운 헤게모니의 전쟁의 시작이다. 인류에게는 생존을 위한 전기 - 댐으로의 진입이 필요하고, 유인원은 또 다시 인류에 의해 자행된 포획과 고문이 두렵다. 특히나 리더에게는. 두 종은 공존할 수 있을까. 두 집단은 민주적으로, 이성적으로 상황을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충분히 똑똑해진 유인원과 생존의 돌파구가 필요한 인류가 그 곳에서 마주선다. 총을 들고!
원작에서 저 멀리, 인류에게 더 가까이
영화 ‘혹성탈출’은 할리우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아니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소설이 원작이다. 놀랍게도 피에르 불은 ‘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이다. ‘콰이강의 다리’는 이 작가가 2차 세계대전당시 동남아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그래서 ‘콰이강의 다리’가 나왔고, 아마도 ‘자유의지에 반하는 포로’의 개념이 철창우리 속의 유인원(혹은 인간)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혹성탈출’은 걸출한 SF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속편이 거듭될수록 좀 더 진화한 철학적 사유를 담는다. 인간이든 유인원이든 무리를 이루고 공동의 선을 유지하기 위한 계급사회의 정착, 그리고 한정된 자원 혹은 상상의 평화를 위한 투쟁까지 다루기 시작한다. 이번에 나온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그런 면이 더 돋보인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원제목은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이다. 제목으로 보자면 인류가 전멸하거나 더 이상 지구의 으뜸 영장류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유인원이 새로운 주체세력이 될 여명을 맞이할 것 같다. 유인원은 과연 옷을 입기 시작하고 직립보행을 하고 스마트폰을 개발하게 될까. 그 과정에서 욕망과 집착, 권력에 대한 ‘사고’가 진화하여 분파가 생기고 국가가 형성될까. 지구는 유인원에 대한 ‘인류2’시대에 진입하는 것일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바로 그 지점을 묘사한다. 살아남은 인류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단합하여 유인원을 몰아내든 말든 말이다. 대신 산 속에서 수동적 평화시대를 구가하든 유인원 세력이 어떤 ‘계기’를 잡아 분열하면서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 보아온 1인자와 2인자의 다툼과, 그 결과가 초래하는 새로운 지배질서의 구축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물론 인간세력처럼 음모와 배신, 정치적 결탁 등이 벌써 이뤄지는 것이다.
‘혹성탈출’은 유인원이 인간을 이길 수 있느냐, 인간이 유인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똑똑한 한 리더의 존재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집단, 어느 세대에서든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그 집단자체의 생존과 절멸을 ‘바이러스’라는 통제 가능했었던 요인과 ‘종의 돌연변이’라는 돌발변수로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혹성탈출’ 리부트 3편은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만들어질 예정이며 (미국)개봉일이 일찌감치 2016년 7월 29일로 정해졌다. 2년 동안 유인원들이 얼마나 더 영리해지고 영악해졌는지, 그리고 ‘혹성탈출’이 얼마나 더 철학적으로 업그레이드될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