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1993년에 개봉되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단관개봉 시절의 일이다. 흥행영화라는 것은 한 극장에서 몇 달씩 상영되던 시절이었다. 영화 ‘서편제’는 단성사에서 개봉되어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의  천만관객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문화충격이었다. 신문에서는 ‘서편제 100만 돌파의 의미’라는 사설이 실릴 정도였고, 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인들이 최고의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다. ‘서편제’는 작가 이청준의 소설이 원작이다. 남도의 소리와 정서를 곧잘 작품에 녹아낸 이청준은 소리꾼 유봉과 그의 피붙이, 그리고 곁가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내놓았다. 영화 서편제의 이야기가 되는 유봉의 이야기, 동호의 이야기, 송화의 이야기는 그의 연작소설집 <남도사람>의 ‘서편제’, ‘소리의 빛’, (그리고 ‘인학동 나그네’) 등에서 펼쳐진다. 임권택 감독은 그 소설을 하나로 묶고, 또 다시 잔가지를 쳐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여 영화로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다시 이청준의 소설에서,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야기를 추리고, 보태어 ‘뮤지컬 서편제’를 완성시킨 것이다. 얼핏 ‘판소리 뮤지컬’로 생각하겠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길이 기억될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뮤지컬 작품이다. 물론, ‘판소리’의 묵직함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스코어 못지않다. 

뮤지컬,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의 시작은 록밴드의 노래에서 시작된다. 동호가 미국에서 로커가 된 것이다. 소설에서, 영화에서 주변부/관찰자 입장이던 동호라는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동호 역시 소리에 얽힌 아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묶어놓은 끈에 의해 운명적으로 소리판에 내던져진 유아의 기억, 소리꾼 유봉에게서 뛰쳐나가고만 싶은 반항아이다. 동호는 기억 속의 엄마의 소리와 자신의 삶을 가로막는 아버지 유봉이 싫다. 유봉은 자신의 소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사람이다. 그리고 소리를 위해 이제는 자식에게도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송화는 동호와는 달리 아비에게 순종한다. 동호가 떠나가고 송화는 눈이 멀게 된다. 이후 주막을 전전하며 소리를 파는 송화. 그런 송화의 흔적을 좇아 찾아 헤매는 동호. 어느 날 운명적으로 한 주막에서 둘은 마주하게 된다. 동호는 북채를 잡아 장단을 맞추고 송화는 한 맺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눈먼 심학규가 효녀 심청을 다시 만나는 대목이다. 10분 남짓 이어지는 송화의 절창에 객석 여기저기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뮤지컬 서편제’는 그렇게 한 맺힌 소리로 뮤지컬 팬들을 울려놓고 만다. 

유봉의 한, 어머니의 소리, 송화의 노래, 동호의 인생은.... 

뮤지컬 서편제는 지난 2010년 초연무대를 가진 뒤 해마다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새로 동호를 위한 ‘마이 라이프 이즈 곤’과 ‘얼라이브’ 두 곡이 추가되어 ‘후대’(後代)의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이번 공연에는 이자람, 차지연, 그리고 장은아가 새로이 송화 역을 맡는다. 동호 역에는 마이클 리, 송용진, 지오가 맡는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는 캐릭터들이다. 이자람의 목소리는 ‘서편제’에 최적화된 것일 터이고, 차지연 또한 검증된 송화이다. 장은아 역시 이들 못지않은 대단한 보이스의 소유자. 뮤지컬 서편제는 유봉과 송화, 동호의 녹록치 않은 삶의 이야기가 조금씩 쌓여나가다가 마지막 심청의 노래로 모든 것을 휘발시키고 마는 작품이다. 

‘뮤지컬 서편제’는 배우들마다 제각기 매력이 있다. 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마치 유봉이 소리에 집착하듯이. 

참, 뮤지컬에서는 송화가 누나로 나오지만, 원작소설에서는 동호가 오라비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2014.4.10)

뮤지컬 ‘서편제’
극작: 조광화  작곡: 윤일상  연출: 이지나  음악감독: 김문정
공연기간: 2014년 3월 20일 ~ 5월 11일
공연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출연: 이자람, 차지연, 장은아(송화 역), 마이클 리, 송용진, 지오(동호 역), 서범석, 양준모 (유봉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