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티야 가문의 저주
태국산(産) 호러는 흥미롭다. 하얀 구름이 휘휘 감도는 신령스러운 산이 보이고, 김동리 소설에서 보았음직한 서낭당이 숲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들판에는 소들이 논을 매고 있고 주름진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아늑함과 낯섦을 더한다. 그러더니 지네가 지나가고 밤이 되더니 공포가 점령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서낭당과 검시소를 오가는 특별한 엑조틱한 공포감을 준다. 이번에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태국호러 [랑종]은 그런 익숙한 듯 낯선 공포를 안겨준다. 이 영화의 목표는 오직 사람을 끝장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다. 용감한 자는 버티고, 비위 약한 자는 티켓조차 끊지 말지어라.
태국은 우리나라의 5배 정도 넓이의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다. 북동쪽에는 ‘이싼’ 지역이라고 있다. 영화는 대체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다.
‘이싼’ 사람들은 생활 속에 샤머니즘이 녹아있다. 눈에 보이는 숲, 산, 나무, 논과 밭에도 전부 귀신, 아니 특별한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팀의 카메라에 잡힌 기이한 일들을 전한다. 물론, [블레어 위치] 이래 재미를 본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다큐 촬영팀은 혼자 사는 중년의 무당(랑종) ‘님’을 따라간다. 님은 이 동네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이다. 님은 평소 바느질(옷수선)을 하며 마을 사람에게 ‘악령이 깃들거나 혼귀가 씌웠으면’ 그것을 쫓아내 주는 일을 한다. 님의 언니 ‘노이’는 ‘천상의고기’라는 개고기집을 운영하고 있다. 노이의 젊은 딸 밍이 어느날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야말로 귀신에 들린 것이다. 이제 ‘랑종’ 님은 밍의 몸에 달라붙은 사상 최악의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필사의 굿을 펼쳐야한다.
‘랑종’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무서운 영화를 잘 만들었다. [셔터], [포비아]같은 특급 공포물에 이어 태국판 전설의 고향인 ‘낭낙’ 이야기를 애절하면서도 코믹하게 재해석한 [피막], 그리고 현대 코미디를 만들다가 오랜만에 [랑종]으로 다시 호러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이싼에서 그는 낯선 ‘무당과 샤머니즘’에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영화는 나홍진의 이야기와 반종 감독의 감각이 빚어낸 공포이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한 것은 이야기의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카메라맨의 흔들리는 영상을 위한 설정 같아 보일 정도로 후반부 영상은 심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불쑥불쑥 등장하는 CCTV 영상은 어둠속 공포를 배가한다. ‘밍’을 사로잡은 악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불순하고도 비도덕적인 죄악의 결과일까, 자자손손 이어지는 가문의 저주일까. 님의 이야기는 밍의 악몽으로, 밍의 비극은 야산티야 가문의 저주로 치환된다.
결국 [랑종]은 새아침의 해를 보지 못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지네와 개, 숲 속의 바얀 상이 전해주는 공포는 결국 밍에게서 폭발한다. 그리고 한쪽 벽에 던져진 짚단인형(제웅)의 불쾌감을 영원히 간직한 채 극장을 나올 것이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 최악의 공포가 완성된다.
[랑종]은 7월 14일 정식개봉에 앞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세 차례 상영되고 지난 주말부터 ‘유료시사회’가 열렸다. [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