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무렵,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연예인 100여 명의 실체라며 이른바 ‘연예인 엑스파일’ PPT문서가 인터넷에서 나돈 적이 있다. 삼성의 정치비자금 폭로파일이라도 이만큼은 인구에 회자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특히 스타에 대해서라면 호기심을 갖고 귀를 쫑긋 세운다. 당연히 'KBS 9시 뉴스'에도 안 나오고, '연예가중계'에도 안 나오고, '디스패치'에서도 사진 찍기 못한 그런 은밀한 이야기를 누군가 처음으로 목격하고, 또 친절하게 6하 원칙에 따라 '믿을만하게 기사화되어' 유통이 시작되더니 어떻게 하면 하룻밤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라이징 스타 의문의 자살, 그 배후는?
우곤(김강우)은 연예계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열혈 매니저이다. 소속사의 형편없는 심미안에 실망한 그는 다니던 연예기획사를 때려치우고 오직 한 배우를 키우는데 헌신한다. 진심과 노력의 대가로 하나뿐인 연예인은 곧 TV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만큼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런데 증권가 찌라시에 대형 스캔들 기사가 터진다. 유력정치인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안성기)과의 스캔들이라니. 매니저는 믿을 수가 없다. 숙소로 달려간다. 이미 여배우는 화장실에 목메고 자살한 상태. 우곤은 세상에 그 어떤 나쁜 놈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찌라시'에 실어 퍼뜨리는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소문의 진상을 찾아, 찌라시를 퍼뜨리는 자 쫓아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찌라시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연예와 경제, 정치, 대기업과 청와대, 국정원간의 더러운 거래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찌라시를 믿느냐?
원래 ‘찌라시’는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안겨주는 '업소홍보용 전단지'이다. 아마 새로 문을 연 헬스클럽 안내문일 수도 있고, 아파트 부동산전단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언어(의 활용)는 진화하기 마련. 톱스타 A군이 B양과 어쩌구하는 기사가 실린 인터넷기사를 두고 "찌라시 보도에 따르면..."이라고 말한다. ‘연예’라는 한 우물을 파는 연예전문매체를 '그다지 믿을 수 없는, 믿거나말거나 유비통신사'라는 의미에서 찌라시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사회. 누구나 ‘먼저’, ‘고급’ 정보를 입수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세상이다. 삼성전자 회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청와와대 높으신 분이 무슨 가방을 멨는지에 따라 다음 날 기업의 주가가 바뀌니 말이다. 그러니, 대기업의 정보맨이라면, (그런게 있다면) 국정원의 정세분석관이라면, 청와대 사회민정수석실이라면 하나같이 '찌라시'에 나오는 말을 허투루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장관후보자 부인이 복부인인지, 차관 후보자의 음란동영상이 있는지, 아니면 정말 톱스타 C군이 게이인지.
영화 '찌라시'는 그런 보통 사람의, 평범한 네티즌의 호기심을 영화적 재미로 완성한 오락작품이다. 거창하게 ‘언론의 자유’, ‘사회정의의 창달’ 같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한다고 믿을 진심도 없으니 말이다. 영화는 ‘여의도와 충무로, 그리고 전경련’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침묵의 게임에 대한 개연성의 주장이며, 호기심의 설명이다.
찌라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작년 SBS의 드라마 '추격자 더 체이스'는 흥미로웠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유착, 그리고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의 언론의 역할, 그리고 진실의 폭로방식으로 인터넷의 활용 등이 흥미진진한 정치드라마로 완성되었다. 이번 영화 '찌라시'는 그런 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라이징 스타, 여자연예인의 자살이 주요 사건이다. 관객은 어느 시점까지는 혼란스러워한다. 매니저 우곤이 아끼는 여자연예인과 정칭인 사이에 '썸씽'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작심하고, '싸구려 청와대 음모론'으로 휘몰아친다. 그런데 이것도 '대통령'이 아니라, '단지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나쁜 놈'에 국한된다. 국정원도 나오지만 내곡동 기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직 국정원 현장요원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기자도, 현직기자라기 보다는 물먹은 전직 기자이다. 마치 찌라시 ‘정론지’가 아니듯, 출연 캐릭터들도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아니다. ‘찌라시’는 현직의 살아있는 권력의 생생한 현장고발이 아니라, 한물간 아니면 무대에 불이 꺼지고, 룸살롱에서 오고가는 그런 알코올 섞인 비루한 남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자유이지만, 그 찌라시에 거명된 스타들은 참 불쌍하다. 네티즌들은 진실여부를 떠나서, 이미 댓글로 자신들의 믿는 바를 배설하며 시시덕거릴 터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 스타는 분통 터져 목을 매든지 아니면 허리띠 풀고 "딱 5초만 보여 드릴까요?" 할지 모른다. 그래서 감독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우곤의 손가락을 분질러놓는지 모른다. 조심하자! (박재환, 2014.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