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능한 감독의 영화 ‘넘버3’(1997)에서 송강호는 ‘현정화’의 헝그리정신을 말하기 전에 ‘불한당’에 대해 부하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아닐 불, 땀 한. 땀을 안 흘린다는 뜻이야!"라고. 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여름에 맞춰 ‘공포단편열전’이 방송된다. 세 편의 단편 중 하나가 바로 2015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불한당들>이다. 과연 그들은 땀을 흘리지 않을까? 적어도 피는 많이 흘린다.
빛바랜 ‘화장장건설 결사반대’ 격문이 붙어있는 시골마을. 몇 집 안 남은 거주민을 쫓아내기 위해 건달들(이동용,이성욱)이 협박을 한다. 그러다가 사람을 엽총으로 쏘아죽이고, 그 현장을 주인공 연홍(한지원)이 목격하게 된다. 인적 드문 시골에서 총을 든 두 명의 불한당에 쫓기는 연홍. 엄마(전국향)도 위험하다. 이제 쫓고 쫓기는, 뺏고 빼앗기는 죽음의 혈투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25분 분량의 ‘불한당들’은 호러 클리쉐가 넘쳐나면서 긴장과 서스펜스로 작품을 꽉 죈다. 위기에 빠진 인물들의 답답한 상황을 연출하고, 또 예상 가능한 소도구를 적절히 활용하며 회심의 반전을 펼치더니, 잇달아 또 다른 위기가 등장하고 마침내 결정적 한방을 안긴다. 물론, 새 아침이 밝으면서 또 다른 긴장감을 툭 내던지며 대미를 장식한다. 밀고당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퇴락한 시골 집을 떠나려는 여주인공, 남겨진 마을 사람의 운명, 불한당 외지인이 뒤엉켜 묘한 울림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늦은 여름밤 어울리는 한편의 호러작품이다.
[인터뷰] 안승혁 감독 ‘ 불한당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
Q. <불한당들>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안승혁 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원래는 동화 ‘빨간 모자’를 모티브로 해서 호러 장르로 시나리오를 구상했었는데 제작여건이 여의치 않아 급하게 스릴러 장르로 수정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다. 어렸을 적 인적이 거의 없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 당시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종종 왕래를 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됐고 지금의 결과물이 나오게 됐다.”
Q. ‘불한당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요?
▶안승혁 감독: “처음에는 주인공 이름인 ‘연홍’이 영화의 제목이었다. 이 제목으로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하더라도 다소 가벼운 톤의 스릴러였는데,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다소 무거운 느낌의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그렇게 되다보니 ‘연홍’이란 제목보다는, 오히려 악당들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는 제목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불한당들’이란 제목을 선택했다.”
Q. 연출의도에 ‘긴장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단편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는데.
▶안승혁 감독: “단편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지점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주제 의식이 없더라도 ‘장르’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25분이라는 시간동안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한눈을 팔지 않게끔 하자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연출 포인트이다.”
Q. 제목인 ‘불한당들’은 이동용, 이성욱 배우가 연기한다.
▶안승혁 감독: “단편을 준비하던 당시 학교에서 큰 규모로 오디션을 진행했었는데 그 오디션에서 이성욱 배우를 먼저 캐스팅했다. 이미지도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가장 흡사했고, 오디션 당시 다른 배우들과는 다르게 여유가 넘치고 유머러스한 자유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이동용 배우는 가장 마지막으로 캐스팅하게 됐다. 역할과 이미지가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기존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들을 찾아보다가 <작전>이란 영화를 보게 됐고 그 영화의 캐릭터 모습이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가장 흡사했고 연기도 매우 좋았다.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시나리오를 전달 드렸고, 흔쾌히 수락을 해주셔서 캐스팅을 하게 됐다.”
Q. 주인공인 연홍을 연기한 한지원 배우는?
▶안승혁 감독: “한지원 배우는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배우이다. 캐스팅에 진척이 없던 와중에 한지원 배우가 학교 동기 작품에 PD로 참여를 하고 있었고, 우연히 학교에서 마주치게 됐다. 오래간만에 한지원 배우를 만나게 된 상황이었는데, 그 순간 제가 찾던 ‘연홍’과 이미지가 딱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며칠 뒤 오디션 겸 대본 리딩을 하기 위해 만났고, 이 시나리오에 대해 동의가 되는지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아도 될 만큼 깊은 신뢰가 생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을 하게 됐다. 캐스팅을 하고 난 뒤에는, 엄마를 홀로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려고 했다가 불한당들을 만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연홍의 심리를 어떻게 하면 가장 개연성 있게 풀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실감 있는 서스펜스를 지향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이 관객들에게 동의가 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에 연홍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묘사하려고 했다. ”
Q. 외딴 시골이라는 영화적 배경과 총, 낫, 호박과 같은 상징적인 미쟝센들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연출할 때 영향을 받은 작품이나 참고했던 것들이 있다면?
▶안승혁 감독: “영화의 전체적인 비주얼 톤은 ‘이든레이크’라는 영화를 참고했다. 소품들은 제가 어렸을 적 시골에서 봐왔던 도구들을 떠올려 영화에 녹였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섭외된 로케이션에 많은 소도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소품들을 적극 활용하며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Q. 이 영화에서 ‘호박’이 상징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안승혁 감독:“영화를 볼 때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여러 지점 중 하나가 의미 없는 소품이 결정적일 때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호박도 그런 식으로 이 영화에서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랐고, 상당히 공을 들여 준비한 소품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박은 참 맛있습니다 ^^”
Q.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촬영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있다면?
▶안승혁 감독: “스릴러 장르를 연출하다 보니 VFX 요소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촬영을 준비했다. 총에서 화약이 뿜어지는 효과, 피 뿜는 효과, 액션 합, 안전소품 제작, 시체더미 운용 등 저예산 단편영화에서 쉽게 시도하기 힘든 요소들을 준비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주인공 ‘연홍’이 뛰고, 구르고, 맞고, 넘어지는 장면이 많다보니 한지원 배우가 누구보다 고생을 참 많이 했다. 그 중 카메라가 뒤집어 지면서 연홍이 뛰어가는 컷이 있는데 카메라 무빙과 배우 동선의 합을 맞추기 위해 많은 테이크를 갔다. 그러다보니 지원 배우가 뛰다가 다리가 풀려서 넘어져 크게 다칠 뻔한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Q. 작품을 연출하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 편인가? 최근 관심 갖는 분야는?
▶안승혁 감독: “연출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기존에 연출했던 영화들은 저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영감을 얻어 제작을 했다. 불한당들은 직접적인 경험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렸을 적 살았던 공간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킹덤> 시즌2에 연출팀으로 참여했었는데 ‘특수 효과’나 ‘특수 분장’이 적극 활용되는 장르에 관심이 커졌다. 그런 장르의 영화를 직접 연출해보고자 장편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
Q. 차기작은? 근황을 알려주신다면?
▶안승혁 감독: “이 작품은 저의 마지막 단편영화라 생각하고 연출했고, 지금은 장편 시나리오를 계속 구상하고 있다. 현재는 생계를 위해 상업영화 현장에서 조감독으로 일을 하고 있다. 작품을 마치면 다시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
Q.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승혁 감독: “<불한당들>이 2015년 제작된 영화라 6년이 넘은 영화인데, 이렇게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다소 폭력적이고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지만 정말 고생해서 찍은 작품이니 귀엽게(?)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안승혁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가 서면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