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장마 소식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제가 있다. 부천에서 열리는 BIFAN이다. 오늘(8일)부터 15일(목)까지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린다. 다행히 비 소식은 없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 직격탄으로 출발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수도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영화제 운영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어쨌든 오늘 개막식과 함께 개막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상영이 예정되어있다.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오늘 오전부터 공식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오전 경기도 부천시 부천시청에 위치한 판타스틱큐브에서는 개막작인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기자시사회와 감독과 배우들의 화상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만의 영화인들이 화상으로 연결된 가운데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올해 1월 대만에서 개봉예정이었던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영어제목 Till We Meet Again)은 대만 코로나 상황 악화로 개봉이 지연되었고, 한국 부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영화는 동양에서는 익숙한 월하(月下)노인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꾸민 작품이다. 농구시합 중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고 샤오룬(가진동)은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 눈을 떠보니 저승. 벼락을 맞아 죽은 그는 이승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 여기서부터 대만식 [신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샤오룬은 이승에 두고 온 연인(송운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월하노인의 짝이 된 핑키(왕정)와 함께 산 사람들의 연인 이어주기 작업에 나선다. 어쩌나 연인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구파도 감독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한국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역시 부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몬몬몬 몬스터>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대만 영화인이다.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는 영화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그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28분의 영화상영이 끝난 뒤 구파도 감독과 세 명의 주연배우 가진동, 왕정, 송운화가 화상으로 연결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한국에 오지 못해 아쉽다면서 이번 작품이 한국관객에게 먼저 소개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구파도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의 만남은 오랜 준비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준비가 되어 있어야할 것이다. 동양에서는 생사관이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기자회견을 하는데 세 명의 배우와 내가 네모난 박스 안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 전생에서도, 내세에서도 이렇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 만들 때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죽음까지 하나의 연결된 고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작품에 담았다.”고 밝혔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모터사이클 배기관과 사람을 붉은 줄로 이어주는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글로 쓰기는 쉽지만 영화로 담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 장면 찍으면서 현장에서는 폭소도 많이 터졌다. 재밌게 촬영했고, 대만에서 개봉될 때 그 장면이 온전히 살아 개봉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구파도 감독은 한국영화 <신과 함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서 “사실 그 영화는 내게 너무 잔혹했다.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니. 살면서 스트레스 엄청 많이 받고 살아야겠더라. 나는 죽은 이후의 세상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싶었다. 죽은 이후의 세상도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가진동과 짝을 이뤄 이승세계의 인연을 이어주는 임무를 맡은 핑키 역의 왕정 배우는 대만영화 <반교>에 나왔던 배우이다. 이번에도 사후세계를 연기한 소감에 대해 “나는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감독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영화는 여행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인물의 인생을 경험하는 게 즐거웠다.”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핑키의 모습이 친구와 있을 때처럼 남들에게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라면 <반교>에서의 모습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나의 내제된 모습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만능창작인 구파도 감독은 자신의 창작의 원천에 대해 “나는 키가 작다. 160센티밖에 안 된다. 운동도 못했다. 그래서 어릴 때 남학생들과 놀지 못하고 여학생과 어울렸다. 여학생과 잘 어울리기 위해 헛소리를 잘했다.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못 보게 하는 집안에서 잘았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잖은가. 이런 집안에서 자란 덕분인 것 같다.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샤오룬 역의 가진동은 "시나리오를 받고 캐릭터 연구를 많이 했다. 주인공이 겪는 일이 우리 인생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마음대로 살다가 나이 들어가며 점점 책임질 일이 생기고 책임질 사람도 생기는데 그것이 인생 같았다.“고 말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인기를 말하며 "한국에서는 로맨틱 멜로 영화가 많이 소개되었는데 노동자 역할도 맡은 적이 있다. 나중에는 원빈처럼 액션 영화도 찍고 싶다.”고 밝혔다.
샤오룬의 이승의 연인을 연기한 송운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국관객과 만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비록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공식 개봉하면 많은 분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