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지난 해 연말 극장에서 잠깐 걸린 김경록 감독의 [잔칫날]이 방송된다. 코로나 와중에 개봉된 이 영화는 11,218명(영진위 KOBIS집계)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데 그쳤지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독립영화계의 역작이다.
무명 MC 경만(하준)은 각종 행사 일을 하며 동생 경미(소주연)와 함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간호 중이다.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경만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비용조차 없는 빡빡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경만은 이벤트업체 진행MC이다. 마을 행사, 할머니 칠순잔치, 마트 개업식 등에 불러가서 재롱을 펼치는 것이 업이다. 경만은 장례식 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동생 몰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에서 열리는 생신 축하연 행사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녹록찮은 상황이 펼쳐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집안이 많을 것이다. 부모의 장례식을 맞이한 오빠와 동생의 막막함. 아마도, 어느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초상을 치르는지, 초상화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걱정일 것이다. 얼마나 찾아올지도 모를 문상객을 위해 머리고기도 마련해둬야 하는지 모른다. 가르쳐주는 어른도 없다. 당장, 상주로서 절은 몇 번 하는지, 향불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영화 [잔칫날]에서는 그렇게 내던져진 상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처연하게 펼쳐진다. 삶이란 게 저렇게 처절하고, 장례식이란 게 얼마나 블랙코미디의 장인지 말이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없는 집안의 경우 막상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어르신이 별로 없다. 있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먼 친척이 허다하다. 경만은 오빠로서, 상주로서 마음이 급하다. 어떻게든 장례를 치러야하니깐. 장례비는 어디서 구할지 막막하다.
영화는 경만과 경미의 답답한 현실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경만과 경미의 속을 긁어놓는 인물들을 하나씩 배치하며 남매의 상황을 더욱 애달프게 만든다. 김록경 감독은 그렇게 이어가던 절망적 심정을 후반부에 ‘아름답게’ 추스른다. 장례는 무사히 끝나고, 남은 것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따뜻하고 푸근한 가족의 정과 추억들이다.
[잔칫날]의 김록경 감독은 “우리는 생존을 위해 돈에 쫓겨 살면서 정말 중요한 걸 놓치기도 한다. 가까이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의 온기,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은 돈의 가치보다 중요한데 말이죠.”라고 이 영화의 의미를 밝힌다.
하준과 소주연의 성실한 연기와 정인기를 비롯한 조연들의 적절한 추임새가 영화의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리얼리티를 살린다. 늦은 밤 방송되지만 놓치지 마시길.
* 이 글은 [잔칫날] 개봉당시 리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