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보다 낯선 ⓒ우사유필름
80년대에 대학에서 영화를 ‘대중문화운동’ 측면에서 '스터디'하고 90년대 충무로영화산업 현장에 올라탄 영화인들 중 여균동이라는 영화인이 있다. 장선우, 박광수, 문성근 이런 영화인들과 인맥과 통할 듯하다. 여하튼 <세상밖으로>(1994)라는 영화로 감독데뷔를 했고,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죽이는 이야기>(1997)와 <미인>(2000) 등을 만들었고, 이런저런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의 신작이 개봉되었다. <저승보다 낯선>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 전에 <예수보다 낯선>(2018)이란 작품을 내놓았고, 이 영화 마지막 스크롤을 보니 세 번째 ‘낯선’시리즈 작품으로 <지구보다 낯선>을 준비 중인 모양이다. 충무로 본류에서 멀찍이 떨어진 왕년의 재기발랄했던 여균동 감독의 넋두리를 들어보자.
영화는 여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극중 영화감독 민우의 이상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민우의 내레이터로 시작된다. “어느 날 나는 죽었다. 아니 코마에 빠졌다.”란다. 아마도 민우는 어떤 사고로 코마상태가 된 모양이다. 육신은 병원 침상에 있고, 영혼은 자유롭게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를 맴돌기 시작한다. 복닥대는 아파트 집을 나와 휑한 어느 시골 도로 위에 서있다. 신도시 주변의 황량한 제방길이다. 아마도 그는 예전에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장소 헌팅이라도 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없다. 오직 그만이 그 길 위에 서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남자(주민진)가 눈에 띤다. ‘놈’으로만 불린다. 이 ‘놈’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곧 저승 차사의 방문을 곧 받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한다. 민우는 이 ‘놈’과 함께 낯선, 하지만 왠지 익숙한 이곳에서 끝없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단순한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시답잖은 이야기. 그러다가 삶과 죽음의 철학적 넋두리를 펼치기도 한다. 어느새 둘은 교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래 기다린 버스가 오면 그 버스를 타고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 버스는 어디를 향하는지는 모른다. 아니, 두 사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저승보다 낯선 ⓒ우사유필름
가끔 황량한 시골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아니, 너무 큰 의미가 있어 그 존재 의의를 파악하는데 인생의 남은 시간을 매달려야할지 모른다. 영화는 줄곧 ‘감독’이라는 사람과 ‘놈’이라는 남자가 티격태격하며 펼치는 말싸움이 전부다. 아마도 스크린보다는 소극장 무대에 더 어울릴 연극 소품인지 모르겠다. 현학적인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툭하고 내리는 결말은 “그리고 이야기만 남는다”라거나 “이야기는 신이다”’같은 뜬금없는 명제들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영화계를 맴돈 감독 자신의 모습과 창작이란 힘든 일에 대한 나름의 결론일지 모르겠다.
‘낯선’ 시리즈의 전편 ‘예수보다 낯선’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여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펼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자기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감독의 강박관념이 체화된 것 아닐까. 그리고 오래전 그가 출연했던 영화 속 남자처럼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회한이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길 위에서 펼쳐진다고 로드무비가 아니고, 주제를 파악하기 난해하다고 블랙코미디는 아닐 것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 남자가 과거의 나인지, 하나뿐인 관객인지는 알 수 없다. 무척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이야기는 이만큼이나 허황되고 저만이나 뜬금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낯설다. 2021년 6월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