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열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우경희 감독의 독립영화 [열아홉]이 곧 개봉된다. 이 영화는 19살 소녀가 맞부딪힌 지옥 같은 삶,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는 한줄기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푸르거나, 아름답거나, 희망에 찬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없이 막막한 절망 속 청소년 드라마이다.
이야기는 2008년에 펼쳐진다. 소정(손영주)은 컴퓨터 미니홈피에서 자신의 꿈을 적어둔다. “스무 살이 되면 집을 나갈 거야”라고. 그 생각은 중학생 때 처음 했단다. 아빠가 엄마 목을 조르는 장면을 보고서.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길을 피해 엄마랑 단 둘이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병치레를 하는 엄마와 함께 녹록치 않은 삶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에게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진다. 소정은 도움의 손길을 청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일을 수습하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 있다면 오직 한 사람, 자신과 사정이 다를 바 없는 성현(정태성)뿐.
코로나로 삶이 온통 우울한데 [열아홉]은 더욱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2008년이란 사실. 물론, 그동안 사회안전망이 얼만 더 촘촘해졌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얼마나 적시에 다가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닥에서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소정은 얼른 졸업하고, 얼른 성인이 되어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리고 어디로? 단지 이 집을 나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것은 행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행을 벗어나려는 주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소정에게 그런 행복을 주지 않는다. 성현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행복하거나 미래가 밝지 않다. 아마도 둘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만남은 로맨스도 아니고, 경찰서도 아니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웃음 한번 나오지 않는 무거운 영화가 있었을까. 이 영화에서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소정이 컴퓨터에 음악 프로그램을 깔고는 키보드를 눌러 나름 음악을 만드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지옥 같은 임대아파트 작은 소정의 방, 피시 모니터에서 점차 빠져나와 아파트 전경을 한번 보여주고는 성현의 아파트, 방, 피시를 보여준다. 채팅도 아니고, 교류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음악으로, 잠시 영혼의 안식을 구할 수 있는 장면이다.
결국, 드라이아이스도 녹기 마련이고, 비밀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며칠, 몇 달을 덮고 숨기려고 발버둥친 비밀에서 벗어난 소정은 마음이 홀가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려준, 지켜봐준 누군가가 눈물 나게 고마웠을 것이다.
부모도 없고, 어른도 사라진 세계, 오직 한 사람에게 던져진 삶의 무게를 견뎌야했다. 소정은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린다. 그 바람이 얼마나 부드럽고, 행복한가. 열아홉은 그렇게 떠나간다. 2021년 6월 30일 개봉/15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