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지린성 옌볜) 출신의 장률 감독은 대학 중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어느날’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아예 한국에 정착하여 정력적으로 신작을 내놓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문학적 정서는 이런 배경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의 열 두 번째 작품 [후쿠오카]가 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시청자를 찾는다. 이 작품은 작년 여름 코로나 사태에 잠깐 극장에 내걸렸었다.
[후쿠오카]에서 장률 감독은 중국과 한국의 도시를 거쳐 처음으로 일본 땅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전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일본 적산가옥’이 등장하더니 이번엔 일본 현지 로케이션을 감행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서울의 한 대학가 지하 헌책방을 보여준다. 책방주인 윤제문은 오는 손님, 가는 손님 관심 없이 복잡한 책더미 속에서 반쯤 자고 있다.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박소담이다. 뜬금없이 “아저씨, 우리 일본에 가요.”란다. 연인도 아니고, 문학적 사제관계도 아닌 두 사람은 그렇게 후쿠오카로 이동한다. 에어비엔비로 작은 다다미방을 잡아둔 둘이 향한 곳은 ‘들국화(野菊)’라는 간판을 단 작은 술집. 권해효가 주인이다. 이제부터 중년남자 둘과 맹랑한 여자 하나가 펼치는 후쿠오카 방랑기가 시작된다.
영화 [후쿠오카]는 ‘엽서풍 해외촬영영화’와는 달리, 이들은 후쿠오카 명소를 탐방하는데 목적을 두거나, 기이한 전설을 의도적으로 떠들거나, 과도하게 친절한 일본인의 모습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래 전- 28년 전, 대학시절 한 여자를 둘러싼 권해효와 윤제문의 치기어린 연애의 기억을 한축으로 하면서, 박소담은 뜬금없이 등장하는 중국여자, 일본여자와의 짧은 만남이 영화를 채운다.
장률 감독은 홍상수인 듯 아닌 듯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미시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면 사적인 영화를 완성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장률 감독의 영화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던, 디아스포라와 인간의 유대감을 조용히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통역이나 3자의 개입 없이 각자의 말로 이야기하면서 소통에 지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중국 사람은 중국어로, 일본 사람은 일본어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듣는다. 그것은 언어의 전달이 아니라 상황의 인식, 공감의 현장일 것이다.
중국고전에 해박하고, 한시(漢詩)를 유려하게 다루며, 소소한 인간의 유머를 놓치지 않던 장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권해효와 윤제문의 술 취한 연기와 박소담의 4차원 선택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읊는다. 그런데, 중문과 교수 출신의 장률 감독이 잡아낸 후쿠오카의 모습은 술 취한 두 남자와 조금 발랄한 한 여자가 펼치는 일‘단’춘몽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장률 감독의 다음 기착지가 궁금해지는 소품이다.
* 이 리뷰는 [후쿠오카] 개봉당시 작성 리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