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인물들이 기울인 노력이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역사를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영화 '더 스파이'(감독 도미닉 쿡)는 1960년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소련 군사정보국의 올레크 대령(메랍 니니트쩨 분)이 핵 전쟁 위기를 막을 중대 기밀을 CIA에 전하려 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CIA는 전달 수단으로 MI6와 협력해 영국 사업가인 일반인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을 스파이로 고용하게 된다.
그레빌 윈은 스파이 제안을 받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업무를 수락하고 나서도 스파이 업무의 긴장감에 지배당하며 힘들어한다. 불안한 나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레빌은 올레크 대령이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동안 그와 쌓인 정이 있었던 그는 올레크 대령을 돕기 위해 모스크바로 위험한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작품은 실제 인물 그레빌 윈이 겪었던 옥살이를 보여준다. 결국 작전에 실패한 올레크와 그레빌은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고 옥살이는 길어져만 갔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MI6는 발을 빼고 CIA 또한 면책권으로 모스크바를 빠져나왔지만 그레빌을 구해낼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어쩔 수 없다"나 혹은 "상대방도 그랬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레빌은 신뢰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집에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 작품을 위해 엄청난 체중 감량을 시도했으며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그레빌 윈 그 자체로 변신해 고통으로 점철된 신들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후반부의 클라이막스 장면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노력과 더해져 거대한 감동을 선사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법과 정치, 그리고 정부의 힘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올레크와 그레빌은 핵 전쟁을 막은 히어로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그레빌과 올레크 대령, 그들의 가족은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기에 작품 속에 나온 "우린 겨우 두 사람이지만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4월 28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