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을 일찍 마주한 인생은 삶보다 죽음을 더 밀접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가끔 그러한 생의 통로를 지나온 이들은 영화에서 사랑보다 상실의 감상에 먼저 주목하고, 주인공들의 표정에서는 충족감보다 외로움을 찾으며, 이어진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서사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해리 맥퀸 감독의 영화 '슈퍼노바'는 이러한 관객들에게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죽음을 앞둔 이와 그를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떠나는 여정이 담긴 이 작품은 사랑으로 인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또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슈퍼노바'의 해리 맥퀸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찬란하고 강렬하게 연출했다.
Q. 작품을 보기 전에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다룬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관람 후 이 영화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과 더불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더욱 광범위하게 다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주제들로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슬픔은 사랑의 대가로 치러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을 겪지 않고 사랑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영화를 쓸 때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담을 땐 밝고 어두운 면을 모두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스토리에 기반하여 구체적이고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슈퍼노바’는 힘든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사람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인생이 그렇듯 ‘슈퍼노바’ 또한 힘든 시간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순간을 담은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Q. '슈퍼노바'는 치매를 겪었던 주변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었던 나로서는 굉장히 공감이 가고 위로를 받는 작품이기도 했다. 관객들 또한 비슷하게 느낄 것 같은데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
가족 일은 굉장히 유감이며 모든 가족이 다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치매가 얼마나 힘든 병인지,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이를 바라만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마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실 거라 생각한다. 나도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왔다. 함께 아파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가족, 의사와 삶을 이어가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경험이었다. 치매는 아이러니하게도 힘든 상황 속에서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내야 한다. 이런 일이 닥친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 잘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주변 사람들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을 가능한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치매 환자가 스스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Q.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고 있는 두 명배우,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를 캐스팅했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연기 호흡은 경이로울 정도였는데, 이 두 배우를 캐스팅한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
영감을 주는 사람에게, 영감을 되는 각본을 쓰고 싶었다. 내게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두 배우는 매우 뛰어난 배우이자 사랑스럽고, 사려 넘치고 지적인 사람이다. 감독의 입장에서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으며, 두 배우와 함께한 작업은 큰 영광이었다.
Q. 콜린 퍼스가 연기한 샘과 스탠리 투치가 연기한 터스커, 이 두 인물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작품 중간중간 웅장한 자연이 담긴 신이 교차된다. 자연의 풍경을 넣은 의도는 무엇인가?
영화에서 자연의 풍경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가 흘러가면서 스토리가 대조되는 포인트마다 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광활한 대자연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벤을 위치시키며 시각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감정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딕 포프와의 촬영은 마치 꿈 같은 시간이었다. 절망적일 정도로 경외감에 차오를 수 있는 자연 경관을 찾고 싶었다. 사실 치매를 겪는 경험과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터스커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경관에 둘러싸인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정작 터스커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이러니를 담을 수 있었다. 영화 속 호수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가장 촬영이 힘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Q. 이 작품은 음악 또한 인상 깊다. 각 상황에 배치된 음악을 통해 작품에 여운을 남겼다. 이런 트랙들을 고른 특정한 계기들이 있었나?
로드 무비라는 장르를 나만의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었듯, 음악 또한 이미 존재하는 음악과 새로 작곡한 오리지널 음악을 함께 사용하고 싶었다. 이는 차를 타고 떠난 두 연인의 여정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묵직한 감정을 선사하는 역할을 해줬다. 샘과 터스커 세대에게 의미 있는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영화에 성숙한 사랑을 의미하는 영원함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키튼 핸슨과 음악 작업은 마법과도 같았다. 그와의 첫 번째 영화 OST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걸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대담한 음악이다.
Q. '슈퍼노바'는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대상에 상관없이 소중한 사람들의 가치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이었다. 감독 본인에게는 이 작품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영화를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만난 한 치매 환자가 영화가 완성되기 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Q.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배우로 먼저 데뷔해 연출 데뷔작 ‘힌터랜드’로 영화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현재 ‘슈퍼노바’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배우로서 힘든 점, 감독으로서 힘든 점은 다를 것 같기도 하다.
연기와 연출은 많은 부분에서 다른 분야지만, 서로 비슷한 점도 많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며, 각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제 직업적으로 연기와 연출에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각 작품은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Q. ‘EastEnders’라는 작품에서 마트 매니저 역인 Jed Quinn을 연기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이후 ‘프로비넌스’라는 작품에서도 활약을 펼쳐 마드리드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을 정도로 연기 실력 또한 훌륭하지 않나. 앞으로 배우로서의 활동도 기대되는데 연기 계획은 없나?
물론이다. 연기 활동도 더 이어가고자 한다. 이번 봄에 촬영하기로 한 작품이 있었으나 연기된 상태다. 연기 활동은 항상 영광이며, 즐거움이다. 행운을 빌어줬으면 좋겠다!
Q. 코로나로 인해 대면 인터뷰를 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다음에 혹시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는가?
진심으로 몇 년 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매료되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집에서 한국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영국에 살면서 좋은 점은 한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대만 해준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있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해리 맥퀸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해주신 영화사 찬란 관계자, 홍보사 모비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