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요? 사실을 말하는데도요?"
문제를 문제로 만들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보이지 않는 문제의 경우에는 그것을 드러내기까지 수많은 고발자들의 목소리와 그에 힘을 보태는 용기가 절실하다.
영화 '크라이시스'(감독 니콜라스 제렉키)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죽음, 마약성 진통제의 진실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약 회사의 진실을 폭로하려는 교수, 아들이 죽은 이유를 찾으려는 엄마, 그리고 국제 마약 밀매단을 쫓는 요원이 중독을 둘러싼 각자의 처절한 싸움을 그려냈다.
제약 회사를 통해 클라라론의 실험을 맡은 박사는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약을 찾고 투여 구역에서 머무는 실험쥐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처참한 결과를 부정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이를 알게 된 제약 회사 측은 연구비 후원을 조건으로 합의서를 제안하지만 박사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한편, 옥시코돈 과다 복용으로 갑자기 사망한 아들의 엄마는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자신 또한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왔던 환자이기에 중독 환자가 아니었던 아들의 죽음을 믿기 힘들었던 그는 사건을 파헤치다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아들이 옥시코돈을 흡연했다고 하기에는 깨끗한 폐를 지니고 있고 사고사라기에는 머리 쪽에 의심스러운 타박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진실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두 인물의 서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중독 환자인 가족을 지닌 요원의 이야기 또한 조명한다. 그가 잠입 수사를 통해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하는 범죄자들을 쫓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치밀하게 조직화된 범죄 구조는 마약성 진통제를 구하는 것이 누구에게든 쉽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크라이시스'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죽음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문제가 생겨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약 회사는 끊임없이 마약성 진통제를 생산하고 그것을 유통하여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더불어 이를 유통해 중독자들이 절차 없이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범죄 집단 또한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든다. 옥시코돈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아들의 앞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엄마의 울부짖음 앞에서도 살인 사건보다 마약 과다 복용 사망 사건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찰의 태도에서 이 씁쓸한 현실이 드러난다.
더불어 약을 처방 받으려고 이미 다친 팔을 차 문에 넣고 짓누르거나 약 생각으로 인해 아들의 경기를 집중해서 보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환자들이 실생활에서 어떠한 고통을 겪는지 보여준다. 약에 취해 가족들에게 막말을 던지고,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에 비해 이를 막을 대책은 부족하다. 속수무책으로 퍼져나가는 진통제의 유통 구조를 막을 방법은 없고 문제를 알았더라고 해도 교수는 이미 작성된 비밀 유지 합의서가 있기에 실험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제약 회사 측 사람들과의 싸움에서도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중독은 순간이나 고통은 영원하다. 하지만 피해자의 책임은 존재하나 가해자의 책임은 없다. 이러한 명제 앞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죽음이라는 결과다.
죽음은 새로 고칠 수 없다. 이미 떠난 생명들은 돌아오지 않기에 우리 사회는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그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크라이시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죽음을 낳는 이들에게 책임의 정의를 일깨우며 일갈하는 작품이다. 5월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