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개막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8일 막을 내린다. 영화제에 맞춰 대한민국 독립영화의 강력한 우군이 되어 주고 있는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20회 JIFF에서 상영된 작품 한 편을 방송한다. 최창환 감독의 <파도를 걷는 소년>이다. 최창환 감독은 올해 신작 <식물카페, 온정>으로 다시 전주를 찾았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은 이미 한국사회의 확실한 구성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온한 시선을 감당해야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배경은 제주도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이들을 둘러싼 뉴스가 쏟아진다. 그들의 수가 이미 200만을 넘어섰단다. 불법체류자 관련 소식이 이어진다. 주인공 ‘김수’(곽민규)도 그런 ‘무리’에 속한 인물이다. 이주노동자 2세이고 지금 엄마는 중국 하이난에 살고 있다. 김수는 엄마가 보내온 그림엽서를 보며 꿈을 꾼다. 엄마의 나라에 가든지, 아니면 카드에 실린 파도 넘실대는 하이난 앞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싶다.
하지만 김수의 신세는 처량하다. 인력사무소에서 편의를 봐주는 갑보 사장을 위해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 아는 동생 필성(김현목)과 함께 제주도에 체류 중인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불법 취업브로커 활동을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서핑’을 하고 싶어 한다. 부러진 서핑보드를 구해 바다로 뛰어들지만 파도가 만만찮다. 그런 수를 지켜보던 해나(김해나)가 정식으로 서핑을 배우라고 권한다. 수는 불법브로커 짓을 청산하고 싶고, 서핑도 배우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수가 원하는 대로 착착 돌아가지는 않는다.
‘파도를 걷는 소년’ 속 인물의 대사를 알아듣기는 어렵다. 제주도 방언과 함께 어눌한 외국인노동자들이 하는 한국말, 그리고 곽민규-김현목 배우가 너무나 유려하게 구사하는 기묘한 말투로 인해 언어적 이질감이 영화의 질박함을 더한다.
이 영화는 외로운 사람과 고독한 바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올라서는 서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타노 타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독립영화답게, 서핑 장면은 그다지 없다. 주인공 수가 서핑을 애타게 타고 싶어 하지만, 딱히 서핑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다. 관객들은 아마, 그가 한국 땅에서 발을 붙이고 있는 것 보다는 그나마 파도 위에 아슬아슬 서서 균형을 잡는 것에 더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지 모른다. 파도를 걷는다는 것은 메시아가 아니라, 언제가 텀벙 빠질 물 위를 걷는 것인지 모른다.
최창환 감독은 줄곧 이주 노동자 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 어두운 구석의 불편한 이야기를 전한다. 올해 전주영화제에 소개된 <식물카페, 온정>은 종국사진기자로 전쟁에서의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이 식물카페를 열고 삶을 치유하는 내용이란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최창환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참, <파도를 타는 소년>의 곽민규 배우는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배우상을 수상했었다.
오늘밤 [독립영화관]에서는 최창환 감독과 주연배우 곽민규의 특별인터뷰도 함께 방송된다. 곽민규 배우는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신작 <창밖은 겨울>과 <남남>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