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서 지펴진 화염 같은 고통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불태우고 파괴한다. 그렇게 화염이 지나간 흔적은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라는 괴물이 탄생한다. 트라우마는 시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이들을 계속해서 과거로 끌어당기고, 현재를 흐릿하게 만들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진화(鎭火)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우리가 소중히 생각했던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는 자세를 통해 이전보다 성숙해지고 진화(進化)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감독 테일러 쉐리던)은 화재 현장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는 한나(안젤리나 졸리 분)가 우연히 숲 속에서 미스터리한 소년을 만나게 되며 그를 노리는 킬러들에게서 그를 지켜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작품 속의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해서 되짚는다. 과거 발생했던 사건의 책임을 홀로 지고 감시탑에서 임무를 행하려 하지만 계속해서 그를 끌어당기는 고통은 끝없는 악몽을 꾸게 하고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를 불행으로 부단히 집어넣는 것은 오직 그의 자책감이다.
그러던 중 한나의 눈앞에 나타난 소년은 한없이 약한 존재다. 마치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한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을 이끌어낸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 작품을 넘어 다양한 장르와 의미를 품은 작품이다. 특히 전 세계인들이 깊은 상실감을 느낀 호주 산불 피해 사태 당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소방관들의 노고와 희생이 느껴지는 신들도 등장한다. 작품 속 각 인물들의 서사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함과 동시에 당시 피해를 입었거나 혹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더불어 이 작품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두 인물의 서사를 통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대의 힘도 강조한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한나가 안정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아무리 불행이 우리의 인생을 잠식하더라도 타인의 힘으로 인해 언젠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끝내 트라우마를 극복한 한나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소년에게 미래를 함께 생각해 보자고 약속하는 신에서 든든한 마음이 드는 것이 그 이유다. 5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