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는 건 아이들의 몫일지 모르나 전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세상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나간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벌어졌던 치열한 토론회 현장과 그 중심에 섰던 발달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의 연대를 조명한 김정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김남연, 이은자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장애 아동 부모님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목소리를 낸 과정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등굣길이 즐거워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들의 이야기는 작은 선의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학교 가는 길’을 걷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염원을 전했다.
Q. ‘학교 가는 길’을 기획하게 된 첫 시작점과 어머니들을 만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김정인 – 뉴스 기사에서 토론회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2차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이 써져 있어서 9월에 카메라 한 대를 들고 강서구에 갔던 것이 ‘학교 가는 길’의 시작이었다. 부모님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학교가 지어지는 여정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겸허하게 기다렸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 와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열흘 정도 지나서 연락이 왔고 만나게 됐다.
Q. 영화 속에는 토론회를 기점으로 한방병원 건립과 특수학교 설립이 대치하는 장면이 다뤄진다. 동시에 반대 측 입장의 근거도 다뤄지며 정부가 제시했던 주거 정책의 허점과 실패를 조명한다.
김정인 - 처음 촬영하러 갔을 때 토론회 한 시간 전에 도착해 공진 초등학교에 가봤다. 서울 시내 대단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학교인데 학생 수가 없어서 폐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사해보니 특수학교 이전에 임대 아파트를 향한 차별과 배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이 주제를 당연히 다뤄야겠다 생각했다. 이 작품을 일반 관객들이 보고 나서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고 망신 주려고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학교 가는 길’은 실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만들 때부터 단순한 찬반, 흑과 백을 나누려던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시선에서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고자 했다.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배우지 못한다.
Q.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작품을 만들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작품을 제작한 소감은 어떠한가?
김정인 – 아이를 키우며 놀이터에서 세 명이 놀고 있는데 두 명만 가깝게 놀고 내 애만 멀리 떨어져 있는 걸 볼 때가 있었는데 막상 내 입장이 되니 부모로서는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그런 일들 가지고도 부모 마음이 이런데, 발달 장애 아동의 부모님들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나는 어렴풋이나마 부모님들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작품이 개봉 연기되고 어려움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머니들이 인터뷰하실 때 솔직한 말씀들을 해주신 덕분이다. 내가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나 싶어 나한테는 굉장히 감사한 경험이었다. 절대 허투루 만들면, 적당히 타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딸과 내 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다. 기성세대가 만든 현실의 모순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고민과 아픔이 지금보다는 많이 사라질 수 있길, 10년 후에는 더 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어머니들의 경우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평소 매체 인터뷰에서 하는 발언들과는 다르게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드러내야 했지 않나.
김남연 – 개인이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운동들을 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모두가 내 아이를 지키며 동시에 남의 아이도 지키는, 공동육아를 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감추면 우리 아이들의 문제는 묻힐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함께 드러내고 호소하자는 의지가 생겼다.
이은자 –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어떤 분이 인터뷰했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 다른 어머니들이 인터뷰한 것을 보고 ‘저런 이야기를 했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신뢰가 많이 쌓여야 가능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김정인 감독님이 신뢰를 잘 쌓으신 것 같다.
Q. 작품 속에는 이러한 어머니들의 연대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특수학교의 설립 또한 혼자라면 이루지 못했을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남연 – 혼자서 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일이다. 연대해야 목소리에 힘이 나고, 뜻을 이룰 수 있다. 한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가 모였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이은자 – 자녀가 특수학교를 이미 다니는 엄마들, 이미 졸업하고 성인이 된 자녀를 둬서 변화가 있어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머니들도 다 같이 운동에 참여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았고, 그럴 여력도 없었다. 남의 일이든 내 일이든, 다 우리의 일이고 전부 같이 하자는 마음이었다. 소수고 약자였고, 그것이 연대하는 이유였다.
Q. 이 작품 속에는 지난 투쟁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들은 작품을 보면서 과거를 되짚는 경험이 됐을 것 같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경험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남연 – 국회의사당 점거했을 때 기자분들도 모인 앞에서 엄마들이 거의 바닥에 드러누워있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그때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던 때였고 우리에겐 절박하고 다급한 상황이었다. 그 일들에서 느낀 감정이 많이 실려 있었다.
이은자 – 토론회 때 날 보는 시선을 보고 지현이가 이 시선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지현이를 쳐다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당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것을 견뎠을 지현이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그런 의미에서 '학교 가는 길'은 장애 아동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겪는 차별에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가 없는 혐오가 섞여있다.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폭력과 피해에 관해 어머니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김남연 – 예전에 아이가 놀이터에 안 가길래 놀이터를 싫어하나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없을 때 놀이터에 가는 것을 봤다. 다른 아이들이 있을 때 안 가는 것뿐이었다. 작품에는 안 나왔지만 다른 어머니들의 자녀에게 더 심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다. 일반 학교를 다닐 때는 혼자서 못 다니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더니 아이가 전교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비장애인 아이들과 지낼 때는 소극적이었다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으니 특수학교에서는 적응을 잘했다. 우리는 이렇기 때문에 특수학교의 중요성을 더욱 아는 것 같다.
이은자 – 예전에 1분 거리에 학교가 있었는데 지현이가 교문 앞에서 버티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차라리 “안 가고 싶다”고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교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 밑에 자석이 있는 듯이 발을 안 떼고 한참 씨름하다가 체념하듯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된다. “힘들면 집에 갈까?”라고 한 번쯤은 말했을 텐데 밀어 넣었던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Q. 이러한 환경에 대해 들을수록 더욱 차별의 잘못된 점에 대해 짚어주는 어른과 배려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장애 아동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있다면 무엇일까?
김남연 – 윤호의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선생님이 좋으신 분이셨다. 한번 “수업이 끝날 때까지 윤호의 장점 세 가지를 찾아보자”라고 학급에 말한 적이 있었다. 끝날 때 되니 아이들이 “윤호는 눈이 초롱초롱 해요. 손이 예뻐요” 등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나도 찾지 못한 점을 하루 만에 찾아낸 것이다. 장점을 볼 수 있는 방법 자체를 제시함으로써 아이들과 반의 분위기가 좋아지더라. 그런 것부터 교육에서 담긴다면 좋을 것 같다.
이은자 – 우리도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고 교류할 순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발달 장애인을 좋아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의 이웃이든, 같은 학교를 다니든, 목욕탕에 오든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배려와 이해가 있는 세상이 오면 좋지만 현실은 그냥 “쟤가 왜 와”라고 막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호감이 있는 이웃도 친구도 생기게 될 것이다.
Q. 결국 시간은 지나도 작품은 기록으로 남는다. 내가 만약 어머니들의 자녀였다면 이 작품을 보고 고마운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나중에 보게 될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무엇일까?
이은자 – 큰 아이에게는 “엄마 보고 싶으면 이 영화 보면 되겠다. 지현이랑 같이 봐”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지현이는 어쩌면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힘들 때가 오면 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엄마가 열심히 머리 깎고 싸웠던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김남연 – “앞으로 네가 살 세상은 좀 더 좋아진 세상일 거야. 즐겁게,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