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되는 김진유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나는 보리>는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이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자녀) 가족이야기이다.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한다. 극중 보리의 아빠와 엄마가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남동생도 그러하다. 11살 소녀 보리는 가족과 있는 ‘침묵의 세계’에서는 수화언어를 쓰고, ‘소리의 세계’에서는 이들의 언어를 이어준다. 영화는 보리네 가족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강릉 바닷가 마을에 사는 보리는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소원을 빌까. 이들 가족은 오늘도 행복하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는 엄마가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수화언어’로 하루를 시작한다. 보리는 학교에 가기 전에 뒷산에 올라가 소원을 빈다. 동생 정우는 학교에 가는 이유가 축구를 하기 위해서이다. 수업시간에는 들을 수가 없으니 그냥 엎어져 자거나 그림 그리기만 할뿐이다. 그나마 축구할 때가 제일 즐겁다. 아빠와 엄마는 그런 동생을 언제나 따뜻하게 바라본다. 오늘도 보리는 중국집에 전화해서 짜장면을 시켜먹는다. 행복하다. 가족은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수화언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보리는 자신도 언어를 잃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같은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한다. ‘소리의 세계’에서 살던 보리가 ‘침묵의 세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은 또 얼마나 먹먹해질까.
영화 <나는 보리>는 한없이 착한 영화이다.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살갑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영화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엄마가 보리의 손을 잡고 시장 옷가게에 들른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두 여자의 대사. “저 ‘벙어리’(정말 그렇게 말한다!!) 또 왔다. 귀찮아 죽겠다.” 듣지 못하는 엄마는 밝은 웃음을 보이며 옷을 고르고 보리의 얼굴에는 화가 잔뜩 묻어나온다. 그 여자들 “얼마 받지?” “5천원 더 받아”. 보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온다. 그리곤 생각났다는 듯이 보리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카운터 언니에게 갖다 주라고 한다.(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팁?) 보리는 그 돈을 들고 가게에 다시 들어서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할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화가 날까.
보리네 가족들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늦잠을 자도 행복하다. 짜장면을 먹어도 행복하고, 짜파게티 먹을 때도 행복하다. TV소리는 보리만 들을 수 있어도 행복하다. 강릉단오제 가서 불꽃놀이를 볼 때도 행복하고, 아빠랑 바다 낚시할 때도 행복하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친구들이 화장실청소 시킬 때, 동생을 후보선수로 뺄 때 슬프다. 너무 슬프다.
침묵의 세계가 ‘답답해 죽을 것 같다’는 보리지만, 가족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그 나이의 보리가 생각할 수 있는 외로움과 일체감 때문일 것이다. 보리는 말도 잘하고, 수화언어도 잘하고, 엄마 아빠께 효도하고, 동생도 잘 돌볼 것이다. 옷가게 사람이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그 동네엔 짜장면 값을 깎아주고, 천하장사 소시지를 주는 동네슈퍼 아줌마가 있는 이상은 말이다.
<나는 보리>는 바닷가마을의 행복한 가족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출연: 김아송(보리), 이린하(정우), 곽진석(아빠), 허지나(아빠), 황유림(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