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의 전여빈을 기억하는가. 로코 <멜로가 체질>을 거치면서 전여빈은 달라졌다. 그런데, 드라마 <빈센조>에서는 다시 한 번 달라진 전여빈을 만났고,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총잡이를 영접하게 된다. 드라마 <빈센조> 막판 촬영에 내몰리던 전여빈을 만나 뒤늦은 <낙원의 밤>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낙원의 밤>은 지난 9일 공개되어 글로벌한 화제를 모았다.
<낙원의 밤>에서 전여빈은 제주도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재연을 연기했다. 사연 많은 삼촌에게서 총 쏘는 방법을 배운 재연은 제주도로 숨어들어온 사연 많은 태구(엄태구)와 함께 박정훈표 느와르의 종극판을 보여준다.
- 느와르 출연 소감은.
전여빈: “느와르에는 전우애를 나누는 동료가 나온다.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겨질 수 있다. 기존의 남녀캐릭터가 남남간의 우정을 그린다면 여기서는 남녀 로맨스를 뛰어넘는 우정이 잘 발휘된 것 같다. 재연은 시한부 인생이라 마음이 바닥에 붙어있는 인물이다. 가족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삶도 곧 끝날 것이란 사실을 안다. 그걸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른 영화 속 여성 주인공처럼 바스러지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 극중 재연은 시크하다. 어떻게 비쳐지기를 원했나.
전여빈: “처음 공항에서 태구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재연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재연이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자기가 곧 죽을병에 걸린 것을 기뻐하는 눈치이다. 사격연습을 하며 하루하루 자기의 목표를 수행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딱히 관심이 없는 무심한 친구로 보였으면 했다. 삼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평화로움이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이 시크함과 함께 일어나기를 원했다.”

● 총을 항상 갖고 다녔다
- 총을 잘 다뤄야했다.
전여빈: “그렇다. 이 영화에서 재연은 총을 잘 쏴야한다. 선수 자세가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린 여자아이가 삼촌에게서 총 다루는 법을 배웠고, 오랫동안 총을 몸에 지녀 제 몸처럼 잘 다루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감독님은 완벽하지 않은 사격자세로 목표물들을 정확하게 맞추는 언밸런스한 모습을 원했다. 사격을 할 때 반동에 놀라가나, 눈빛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눈빛만큼을 강인하고 싶었다.“
- 재연은 왜 총쏘기를 연마하는가.
전여빈: “삼촌이 죽고 재연이 펜션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재연은 가족들이 모두 총에 죽은 모습을 보게 되고, 충격이 심각한 병이 생긴 것이다. 삭제된 장면 중에 그런 것도 있었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고 굉장히 기뻐한다. 자신이 곧 죽을 몸이란 것을 알기에 초연하고,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그 사람들을 복수하려는 일념에 그렇게 총 쏘는 연습을 한다. 자포자기는 아니다. 복수에 대한 큰 목표가 있었다. 물론 죽음 또한 이 친구의 목표이다. 가족에게 빨리 돌아기 위한.”
전여빈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 촬영 후반부에 <낙원의 밤> 캐스팅이 확정되었고 그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사격장을 찾아 총 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전여빈: “제주도에 가 있는 동안에 항상 총(소품)을 갖고 다녔다. 촬영 나가기 전에. 자세 연습을 했다. 쉬는 시간에도 총을 갖고 놀았던 것 같다.”
- 재연이란 인물에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여빈: “아무래도 작품 속 한 인물을 맡게 되면 원래의 전여빈으로 사는 시간보다 그 캐릭터로 사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캐릭터와 동일시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낯서 공간이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전여빈의 일상과 완전히 분리되니 ‘재연’으로 살기에 편리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의 감정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 나는 아직 새싹배우라 여기고 몰입하게 된다. 그건 내가 잘하는 것이다. 원래의 전여빈으로 돌아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제주도의 하늘과 바다가 나에게 그런 평온함을 주었다. 바다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진다.”
● 독립영화, 드라마, 영화, 넷플릭스 주인공
- 독립영화의 아이콘에서 이제는 드라마와 넷플릭스의 총아가 되었다. 언제부터 자신의 연기폭이 이렇게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했고,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을 가졌는지.
전여빈: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드린다.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마음먹은 21살부터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막연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때의 제 마음가짐은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신감보다는 마음속에 원하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니즈’, ‘원트’, ‘원함’이 더 컸다. ‘광대무변’(廣大無邊) 끝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도 그런 배우가 되길 원한다. 이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물회는 맛있었는지.
전여빈: “선배님들이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으면서 협상하는 장면. 부산에서 찍은 것 같은데, 촬영장 모니터로 연기하는 걸 훔쳐보는데 포스가 넘치고 위트가 넘치는 대단한 장면이었다. 긴장감과 재치감이 핑퐁 하듯이 펼쳐지는 것이 블랙코미디의 진수였다.그리고 태구와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 피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각자 바다를 바라보는데 평온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물회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극중에서는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물회의 진심’이고 싶었다. 평소에는 절대 사먹는 일이 없다.”
- 엄태구 배우는 진중하기로 유명한 배우이다. 연기호흡은 어땠나.
전여빈: “<밀정>에 단역으로 출연할 때 상해에서 한번 인사 나눈 적이 있다. 하시모토 역을 보면서 설정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놀랐던 적이 있다. 궁금증이 많은 배우이다. 오빠는 말수는 적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뜨겁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서로를 배려하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감독님이 둘을 데리고 맛집이랑 카페 찾아가서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셨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가 되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전여빈을 반성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좋은 선배이다.”
- 드라마 <빈센조>의 홍차영과 영화 <낙원의 밤>의 재연은 어떻게 다른가. 결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이나 복수를 향해 나아간다는 면에서 조금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여빈: “배우로 여러 인물을 연기하면서 영향을 주고 닮아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서로 연결된다면 그 캐릭터에 미안해진다. ‘죄많은 소녀’의 영희도, ‘멜로가 체질’의 은정도 각자 자기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재연은 재연대로 홍차영은 홍차영대로. 그들의 전사를 나름대로 만들고, 다르게 설정값을 주려고 했다.”

● 엔딩을 이야기하다
- 엔딩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분노의 총질 장면을 처음 시나리오로 봤을 때 그 이미지가 쉽게 떠올라졌었나. 종이에 피가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전여빈: “감독님이 주신 시나리오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어떤 음악이 깔리고 어떤 풍경이 펼쳐질 것이며 마지막 표정을 어떻게 될지 굉장히 서정적으로 표현해 주셨는데 핏빛이 서려있는 느와르가 확실했다. 감독님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그림이 잘 그려졌다. 기존에 알던, 짙은 어둠만 있는 느와르가 아니라 처연하고 맑은 하늘빛의 바다가 파도가 넘실거리는 그런 장면이 연상 되었다. 총격전 다 끝나고, 바다에서의 표정이 훨씬 더 아름답게 그려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 장면,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떤 음악이었는지.
전여빈: “그 장면 촬영 때 파도소리가 너무 커서 음악은 안 들렸다. 재연은 이어폰은 끼고 있지만 아무 음악도 안 들었을 것이다. 가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외부와 차단하고 싶을 때 그러지 않나. 뭔가 고요를 원했을 것이다. 재연은 그 때 광활한 바다와 하늘을 쳐다본 것 같다. 슬프지만 편안해진 마음이다.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죽음에 다다르는 복합적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다.“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이기영, 박호산 등이 출연하는 박훈정 감독의 제주도 넷플릭스 느와르 <낙원의 밤>은 지난 9일 전 세계 190여 개국 동시 공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