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한주원, 박정제, 유재이, 오지화, 남상배, 도해원, 이창진, 한기환, 권혁.....” 이렇게 많은 캐릭터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가 흔한가. 지난 주 막을 내린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드라마 팬들로부터 일치된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가 방송되는 날을 ‘괴요일’이라 부르고, ‘괴물’을 시청하는 사람을 ‘괴물러’라고 칭할 만큼 마니아를 양산한 작품이다. TV방송 종료와 함께 넷플릭스에도 작품이 공개되면서 <괴물>은 다시 한 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괴물>을 연출한 심나연 감독을 만나 작품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심나연 감독은 JTBC 2부작 <한여름의 추억>(2017)과 <열여덟의 순간>(2019)을 연출했었다.
- 웰메이드라는 호평 쏟아지고 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든 느낌이 어땠는지.
심나연 감독: “한권의 소설책을 읽은 기분이었다. 연출하고 싶었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다 비정상인 것 같았고, 만안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괴물들의 집합체였다. 처음엔 동식이만 괴물로 느껴지는데 뒤로 갈수록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진다. 이 마을 자체가 괴물 그 자체라고 보였다. 인물과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만양’이라고 해서, 안양 (만안구)이 나오나 싶었다. 개발이 막 시작된 읍 단위일 수도 있다. 작가와 지역 설정은 어떻게 했는지.
심나연 감독: “극에 등장하는 만양이나 문주시는 작가가 설정해 놓았다. 여기 (JTBC가 있는) 상암동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울과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공간이다. 판타지한 공간 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음직한 가상의 공간을 생각했다.”
- 신하균-여진구 배우뿐만 아니라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연기괴물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했다.
심나연 감독: “다들 연기 내공이 완벽해서 연기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출중했다.”
- 신하균(이동식)과 여진구(한주원)는 닮은꼴이다.
심나연 감독: “서로가 안쓰러운 면이 연결된다. 어떤 일을 겪게 되고 자신의 운명이 달라지는 안타까운 과정, 그 느낌을 연결하고 싶었다. 8회까지는 주원이 동식을 계속 의심하며, 아니란 걸 알면서도 집착하는 과정을 이어갔다. 9회부터는 동식이가 조금씩 틈을 열어주었다. 서로 동감해가는 것을 표현해가며 엔딩에서 죄지은 것은 벌 받고 다시 만나자고 하는 모습을 슬프게 표현했다.”
- 배우들은 어느 정도 선악의 역할, 이야기의 결말을 알아야 그에 맞춰 연기의 톤을 맞출 수 있었을 것 같다. 배우들은 처음부터 결과를 다 알고 시작한 것인지.
심나연 감독: “작가님이 처음에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정도 공유된 상태에서 시작했다. 떡밥을 던져도, 어느 정도 회수할 가능성이 있도록 말이다. 그런 배려가 있었기에 완전한 대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연기를 할 수 있었다.”
- 이동식을 과하게 의심하는 드라마 초반부 한주원의 집착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심나연 감독: “고민했던 부분이다. 여진구씨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진구 배우는 자기가 잘못 짚고, 잘못된 길을 가고, 마지막에 자기의 잘못을 바로 세우며 정의를 향해가는 주원의 성장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초반 이런 설정은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초반에 확실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록 나중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구씨가 우직하게 연기했다. 16부를 보면서 새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힘을 느꼈다.”
-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 좀 해주시라. 그런 연기괴물들을 어떻게 끌어 모을 수 있었나.
심나연 감독: “일단 많이 만났다. 신하균, 여진구라는 투톱이 있으니 그 주변부 인물은 그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던 분들을 넣고 싶었다. 캐릭터에 잘 맞는 사람이 될 것 이라고 두 배우에게 이야기했고, 조화로운 캐스팅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연기자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후배들을 소개받고, 좋은 연기자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괴물>이 이렇게 사랑받은 이유는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뛰어난 연기 때문일 것이다. 길해연, 정규성, 김신록 등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맛이 쏠쏠했을 것이다. 서브캐릭터가 작품에서 훌륭하게 구현되었다. 캐릭터 이름을 다 욀 정도로 매니아가 생겼다.”
- 음악도 좋았다.
심나연 감독: “음악감독님이 일단 곡을 많이 만들었다. 대본 나왔을 때 각 씬마다 테마에 맞춰 어울리는 음악을 준비했다. 만양에 어울리는 그로테스크한 곡을 만들었다. 최백호 선배님에게 부탁드려 녹음도 무사히 마쳤다. 연륜이 묻어나는 음악이다. 음악감독이 7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곡 작업을 함께 했으니 작품에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심나연 감독: “1부 엔딩 장면 아니겠는가. 5부 엔딩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 작가님이 각 배우들에게 각자의 전사(前史)를 알려줬다고 하는데.
심나연 감독: “작가님이 굉장히 열심히 작업하셨다.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하신다. 따로 드라마를 만들만큼 전사가 충실했다. 대본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한권의 소설책 같았다. 배우와 연출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훌륭한 작가님이시다.”
- 그걸로 시즌2나 스핀오프를 만들 수 있겠다.
심나연 감독: “그 부분은 작가님이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아직 시즌2에 관한 기획은 없다.”
- 이전에 연출을 맡은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다. 준비 과정은.
심나연 감독: “준비할 때부터 다르게 접근한 것 같다. 미술, 촬영, 음악 등 모든 부분에서 스릴러의 기본에 맞췄다. ‘시그널’, ‘비밀의 숲’ 등 시청자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보고 ‘괴물’의 특성을 준비했다. 세트도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만양’의 느낌이 들도록, ‘괴물’만의 세트를 만들었다.”
- 드라마에서는 20년 전 일어났던 이야기가 자주 회상되고, 펼친다. 옛날 모습을 보여줄 때 특별한 분장의 힘이 있었는지.
심나연 감독: “옛날 장면이 많아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역이 연기한 부분도 있었고, CG효과도 약간 들어갔다. 20년 전 사건이 어땠는지 본인들이 연기하기도 했다. CG로 조금밖에 건드리지 않았다. DI작업에서 옛날 느낌이 들도록 했다. 거부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청자들이 만족해하시는 것을 보니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신 것 같다.”
- 허성태 배우 캐릭터는 배우 백그라운드에 따른 아이디어인가.
심나연 감독: “많이 알려져 있었다. 미팅할 때 그런 이야기가 나와 작가님이 간간히 러시아어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작가가 (우리말로) 대사 써놓으면 배우가 러시아말로 옮겼다. 조금 부담스러워하시기도 했다. 주위 친구 분들께 연락해서 극에 어울리게 다듬었다. 재미를 살리기 위해 넣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 그럼, 심나연 감독이 생각하는 <괴물>의 메시지는?
심나연 감독: “한 사람이 괴물이 되는 과정이 대단한 게 아니다. 나의 작은 실수를 덮음으로써 눈덩이처럼 불어나 괴물이 되는 것이다. 자기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한기환의 실수, 잘못이 아니라 동식이라는 피해자가 생겼다. 내 안의 작은 이기심, 나에게만 관대한 것이 스스로 괴물로 만드는 것이다.”
-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인가.
심나연 감독: “굉장히 상의를 많이 했다. 신하균 선배랑 진짜 많이 했다. 나의 연출스타일이다. 배우를 믿는다. 1회부터 자기 역할을 한 사람이 자기 캐릭터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것이다. 현장에서 단점을 까놓고 최대한 많이 소통하려고 했다.”
- 어떻게 드라마 연출자로 단련되었나.
심나연 감독: “좋은 선배 밑에서 작품 하면 배워나가는 것이다. 10년 넘게 조연출하면 연출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것이 피디의 배양 단계일 것이다. 앞으로도 대중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제 작품을 보고 감동받아 잠을 못 잤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 괴물이 곧 열린 백상예술대상에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소감은.
심나연 감독: “너무나 영광스럽다. 저보다는 후보에 오른 분들이 상을 탔으면 한다. 다들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 너무 좋아하고 있다.”
<괴물>은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 연출상(심나연), 극본상(김수진), 최우수연기상(신하균), 조연상(최대훈), 신인상(최성은), 예술상(장종경/촬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은 5월 13일 열린다.
만양에서 펼쳐지는 괴물 같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심리 추적 스릴러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2월 19일 시작되어, 4월 10일 최종회(16회)가 방송되었다. 최종회는 전국 6.0%, 수도권 6.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