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기억한다’의 수단이 글쓰기인 것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에게 ‘기억한다’의 수단은 기록일 것이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영화 ‘부재의 기억’의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영상을 전 세계인들에게 선보였고 그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충격과 공포로, 또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비극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다가온 지금, 이승준 감독은 아이들을 지켜줄 안전망이 없었던 그날의 사회가 오늘의 사회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봤다. 여전히 ‘부재의 기억’은 이승준 감독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남겨져 있다.
Q. 코로나 사태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곧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지켜보는 느낌이 어떠한가?
작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갔다가 뉴욕을 들렸다 왔다. 그때만 해도 공항에 가지 않는 이상 뉴욕에서 마스크 쓴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귀국하고 나서 기자회견도 했는데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그 이후에 심각해졌다. 해외에서 초청된 기회들이 있어 출국 준비를 했는데 다 연기 혹은 취소됐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일단 큰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작품에 관해서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유가족들과 함께 모이고 상영하는 자리를 못 가진 것은 아쉬웠다.
Q. 들으면서도 ‘부재의 기억’을 통해 만난 유가족들과의 유대가 깊은 것이 느껴진다.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만들게 됐는지, ‘부재의 기억’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미국 ‘필드 오브 비전(Field of Vision)’이라는 파트너가 개인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사회적 이슈들을 영화적으로 푸는 단편 콘텐츠들을 지향하는 플랫폼이다. 그때 박근혜 탄핵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고 온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할 수 있는 내게 연락했고 프로듀서랑 상의 끝에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나왔다. 박근혜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던 지점들이 있었다. 이후 유가족 협회를 찾아갔다. 유가족 협의회에서도 그런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의견을 주셨다.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로 차분하게 돌아가서 볼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담담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Q. 이후 ‘부재의 기억’을 구성한 과정은 어떠했나?
유가족 협의회에서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하자고 해서 제작이 시작됐다. 그때가 마침 세월호 인양 관련해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때다. 그때는 예민한 시기였다. 언론이 아니기에 방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촬영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인터뷰 했던 분들이 기꺼이 신뢰감을 쌓아 주셨고 많이 도와주셨다. 그 다음은 내가 부딪혀야 하는 부분이었다. 4.16 기록단과 유가족 협의회 자료실에서 많은 자료를 받았다.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Q. 그렇게 만들어진 ‘부재의 기억’은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내를 넘어 해외의 수많은 이들에게 전해졌고 해외에 있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편집하면서부터 이슈가 됐던 부분이 있다. 30분짜리 편집하는데 1년이 걸렸다. 굉장히 오래 걸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맥락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일이 복잡하다. 그것들을 추리고 심플하게 만드는 것을 ‘필드 오브 비전’의 파트너랑 같이 했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서 오는 감상 포인트의 차이가 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도 꺼이꺼이 안 울지 않나. 세월호가 인양됐을 때 현장은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 일부를 파트너에게 보여주니 무척 낯설어하고 힘들어 했다. ‘필드 오브 비전’ 편집 감독이 같이 붙어서 작업을 했었고 드라이하게 편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영회에 가서 봤을 때 달랐다. 오히려 심플한 구성으로 가는 것이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에 도움이 됐다.
Q. 세월호 참사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코로나 사태라는 큰 재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잘 대응했다. ‘K-방역’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의 사례가 모범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가족 협의회 분들 중 한 분이 “우리 애들 덕분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재난이 벌어졌을 때 그에 대처하는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Q.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의 능력과 가치관도 중요하고 시스템과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쉽게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재한 것들이 많았다. 프로토콜이 없었고 운용할 인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늘진 부분들을 케어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법적인 완비가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개인의 능력과 가치관에 기대는 것은 불확실하니 제도로 이런 것들을 보호해야 한다. 바꾸려면 계속해서 국민들이 눈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Q. 영화 ‘당신의 사월’(감독 주현숙)처럼 꾸준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잊지 않고 관련 내용을 작품으로 다루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는 계속 이야기되어야 한다. 언론에서 새로운 것을 밝히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줬으면 좋겠고 이외에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행동들을 다른 감독들이 하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독으로서 고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났기에 더욱 힘들 것이다. 편집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제작하는 동안 버텨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