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그러기에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문제를 조명하고 해결해나가기 힘들다. 특히 청소년 문제의 경우, 그들을 지켜보고 보살피고 성장시키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환 감독은 이러한 문제를 불편하더라도 직시하기로 결심한 어른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작 ‘박화영’을 통해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일그러진 서사를 그린 후 이번에도 10대 소녀들이 겪는 임신, 낙태, 성매매 문제와 같은 이슈들은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처한 벼랑 끝에서 내리는 선택들을 통해 그들이 속한 현실과 우리의 이야기를 짚었다.
Q. ‘어른들은 몰라요’는 사회에서 방치된 10대 청소년들의 현실이 담겨있다. 이러한 주제들을 다룬 계기가 궁금하다.
전작 ‘박화영’을 100회 넘게 GV를 했는데 이대 아트하우스에서 했던 GV가 끝났을 때 어떤 여자 두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알고 보니 청소년 쉼터에서 아이들을 선도하는 선생님들이었다. 영화를 하루빨리 쉼터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왜 청소년 관람 불가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 10대에 관한 영화를 한 번만 더 찍어주시면 안 되냐고 물으셨다. 그때 찍겠다는 생각보다는 또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한참 우리나라 사회에서 낙태 찬반이 팽팽하게 이뤄질 때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글을 잠깐 썼는데 10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사기를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박화영’에서 임신해서 퇴장한 세진이라는 캐릭터가 ‘어른들은 몰라요’ 세계관에 들어와서 산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 이유미 배우가 한 시간 반 동안 관객들의 안내자가 되어 어떻게 서사를 설득하고 보여줄지 관심이 갔다.
Q. 현실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많이 했을 것 같다. 그 과정은 어떠했나?
‘시대는 변해도 세대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유년 시절의 10대, 아버지 세대에 보낸 10대, 앞으로 맞이할 10대 친구들을 떠올리면 어느 시대에나 왕따 같은 폭력 문제나 임신 문제가 존재했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면서 매체들도 많아지고 SNS 같은 창구도 있어서 많이 튀어나왔을 뿐이다. 모양은 달라졌을 뿐 세대의 고민은 항상 존재해왔다. ‘박화영’ 때도 그렇고 내 10대 시절에서 경험했던 것, 동네에 떠돌았던 무성한 소문들을 바탕으로 베이스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나 자료들도 조사했다. 모자란 부분들은 인터뷰를 통해서 채워 넣었다.
Q. 그런 노력 덕분인지 작품이 실제 현장을 보는 듯 현실적이었다. 10대의 임신과 낙태부터 시작해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부분들도 현실적이다. 선생님이 정자와 난자가 등장하는 성교육 비디오를 틀어주며 의미 없는 성교육을 하고 있지 않나.
그 신을 찍을 때 선생님은 텔레비전을 틀어준 후에 책을 읽고 있다. 애들은 딴짓을 한다. 임신했다는 세진의 말에 선생님은 놀라지도 않는다. 세진을 호출해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임신을 시킨 교사야말로 제일 답답한 인물이다. 해결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아버지에게 매 맞는 걸로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다.
Q.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인공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벼랑의 끝에 서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떠한 현상을 눈으로 봐도 ‘쟤네는 모르니까’라며 아이들을 무시할 때도 있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어떤 손길을 내어주고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는지가 그들과 연결이 되냐, 안 되냐를 결정짓는 것 같다. 그런 인간들의 군상을 영화를 통해 보여줬다. 편 가르기 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전작 ‘박화영’ 또한 10대들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처연한 신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 같나?
‘박화영’은 호불호가 극명했다. 불편해한 사람은 불편해했고 좋아한 사람은 좋아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편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 작품은 편집하고 보니 난 불편하지 않은데 사람들은 불편해하는 반응들을 스멀스멀 보였다. 그래서 보편적인 영화로 수정을 하자는 마음이었다. 다음 해답은 개봉을 해야 알 것 같다.
Q. 이번 작품 또한 ‘세다’라고 받아들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조금의 영역만 넓히면 ‘세다’의 이면에 ‘여리다’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리기에, 약하기에 세게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센 인물은 그러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이나 마음을 받으면 쉽게 무너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진의 표정들과 세진의 판단들을 우리 주위에 있는 인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면 좋겠다. 그 시각의 인치를 넓혀본다면 아마 이 작품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