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2nd JIFF)가 4월 29일(목)부터 5월 8일(토)까지 열흘 간 전주에서 열린다.
‘영화는 계속된다 Film Goes On’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48개국에서 출품된 186편(해외 109편, 국내 77편 / 장편 116편, 단편 70편)의 영화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CGV전주고사, 씨네Q 전주영화의거리, 전주시네마타운에서 나뉘어 상영된다. 작년에 이어 올행에도 OTT 웨이브를 통해서는 141편(해외 79편, 국내 62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개막작은 세르비아 출신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의 <아버지의 길>(영어제목: FATHER)이 선정되었다.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는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일용직노동자다. 2년째 임금이 체불되자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직장으로 가서 밀린 급여를 주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하고 결국 몸에 불을 붙인다. 다행히 아내의 목숨은 건졌지만, 뒷이야기는 더욱 암담하다. 빈부격차의 골이 깊어지는 현상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고, 세르비아처럼 비교적 최근에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폐막작은 프랑스 오렐 감독의 애니메이션 <조셉>(JOSEP)이다. 1939년 스페인 내전 중에 공화주의자 50만 명이 프랑코 독재를 피해 프랑스로 탈출했고, 이들은 국경 부근의 수용소에서 머물게 된다. 그중 한 명인 일러스트레이터 조셉 바르톨리는 비루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수용소 생활을 견뎌낸다. 프랑스의 [르몽드』]의 만평 작가로 활동한 감독 오렐은 조셉 바르톨리의 작품을 접하고 받은 감동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영화화 계획으로부터 완성까지 10년이 소요된 작품으로 대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감동과 작품 곳곳에 느껴지는 정성 가득한 장면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국제경쟁부문 상영작: 해변의 금붕어
국제경쟁부문에는 10편의 작품을 초청되었다. 모로코 작품 <파이널 라운드>는 유럽에 가고자 하는 아프리카 난민 문제를 다룬, 각각 모로코와 스페인 출신인 두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아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강렬하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연출을 보여 주고 있다. 역시 레바논 출신 지미 케이루즈의 장편 데뷔작인 <전장의 피아니스트>는 ISIS가 점거한 시리아의 한 도시에서 내전으로 인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브리엘 야레드의 아름다운 영화 음악과 함께 그리고 있다. 일본의 배우 출신 감독 오가와 사라가 만든 <해변의 금붕어>는 위탁 가정에서 자란 한 여고생이 새로 들어온 어린 소녀를 돌보며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작품이다.
한국경쟁부문 상영작: 열아홉
한국경쟁부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독립영화 10편이 소개된다. <코리도라스>는 지체 장애인이자 시인인 박동수의 삶을 고요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다. 비장애인 감독이 함께 공동 연출한 <복지식당>은 장애인 세계의 내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성소수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의 주인공은 FTM 트랜스젠더 한결과 그의 어머니 나비, 그리고 게이 예준과 어머니 비비안이다. 영화는 두 어머니가 아이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모든 힘을 보태는 과정을 보여 준다. 간호사들의 ‘태움’ 문제를 다루는 <인플루엔자>는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넘어 작은 사회의 권력 관계를 탐구한다. 한 섬유 공장에서 벌어지는 산업재해를 배경으로 삼는 <희수>는 현실과 그 바깥 세계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오로지 노동에 찌든 한 여성의 파리한 표정에 집중한다. 독특한 감수성을 품은 <성적표의 김민영>의 세계는 리얼리티와 판타지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는 듯하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소녀들의 아기자기한 삶과 오밀조밀한 감정선이 디테일하게 실린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포옹
새로운 시각을 담은 장편영화 기획에 투자·제작을 지원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서는 올해 임흥순 감독의 <포옹>, 테드 펜트 감독의 <아웃사이드 노이즈>, 민환기 감독의 <노회찬, 6411>까지 3편의 신작이 공개된다.
임흥순 감독의 <포옹>은 팬데믹 상황에 영화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영화계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영화인의 일상을 모자이크처럼 모아 보여준다.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인들이 보내 온 촬영 이미지와 개인적인 사연, 그들의 꿈을 재구성해 한 편의 영화로 완성한 것이다. 팬데믹 상황을 지나는 영화인들의 현실과 무의식을 볼 수 있다. 테드 펜트 감독의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디지털 시대에 노마드처럼 도시를 떠돌며 사는 젊은이들이 우연히 만나는 인연을 그린 작품이다. 민환기 감독의 <노회찬, 6411>은 진보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일생을 바친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일관되게 추구한 신념과 철학을 주제로 삼은 다큐멘터리이다.
올해 부활한 ‘프론트라인’ 부문에서는 도발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는 11편의 작품이 공개된다.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2편의 다큐멘터리 <입법회 점령사건>과 <붉은 벽돌벽 안에서> 같은 경우, 크레디트에서 볼 수 있듯이 무수한 홍콩의 저널리스트들과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낸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프랑스 감독 셀린 루제의 <정글의 외침>은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숲속 마을에 미국 최대의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천연가스를 개발하겠다고 공장을 만들면서 불어닥친 현대화의 광풍을 담은 작품이다. <페블스>는 인도 남부의 찢어지게 가난한 지역, 아리타파티를 배경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 속에 무기력한 사람들과 이미 해체된 가족 관계를 보여 준다.
검열
독특한 장르영화를 찾는 관객을 위해 준비한 올해 ‘불면의 밤’에서는 5편의 독특한 영화가 영화팬을 잠못들게 만들 예정이다. <검열>은 독특한 설정을 가진 심리 공포물인 동시에 지금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1980년대 영국 공포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이다. <배드 헤어> 또한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풍자적인 공포영화다. 1980년대 말 음악 TV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 애나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으며 뒷전으로 밀려난다. 미국 애니메이션 <크립토주>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다. 판타지, SF, 공포 등 무수한 장르적 요소를 뒤섞은 이 영화는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이면서 복잡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겟 더 헬 아웃>은 대만 의회를 배경으로 하는 코믹 호러영화다. 주인공은 의회 경비원에서 졸지에 의원이 된 남성 왕요웨이와 폭행 사건에 휘말려 왕요웨이의 보좌관이 되는 전직 여성 의원 슝잉잉. 이들은 국회 안에 퍼진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된 국회의원들의 난동을 해결해야 한다.
코로네이션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인의 삶에 장애물이 되어 온 코로나19 팬데믹을 돌아보기 위한 특별전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을 준비했다. 이 특별전에서 선보이는 영화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의 고통과 헌신적인 의료진의 노력 같은 심각한 풍경뿐 아니라 이 시대를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견디려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다큐멘터리 작가인 아이웨이웨이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코로네이션>은 지난해 초 전격 봉쇄 당시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우한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은 배경을 미국으로 바꿔서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감독의 할머니가 누워 계신 병원을 배경으로 한 중국 다큐멘터리 <방주>는 코로나의 비극과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내적으로 깊은 정서적 일체감을 보여 준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할머니의 병환이 자아내는 우울과 세기적 팬데믹의 공포는 묘하게 공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