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시청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한국사회 이야기이다 *
나이 예순 아흔의 여자를 어떻게 불러야할까. 할머니? 요즘은 애매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젊어 보인다’는 칭찬치레를 할지 모른다. 그게 이제는 확실히 차별적인,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수영장에서 ‘몸매가 처녀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전해준다. 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되는 임선애 감독의 <69세>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완전한 어둠 속에서 ‘69살’ 효정의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온다. 2분 정도 진행되는 이 장면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29살 먹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시놉시스가 공개되면서 곧장 영화사이트에서 별점 테러를 당했다. ‘69세 여성이 젊은 남자에게 성폭행 당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모양이다. 어떤 점이 불편했을까.
효정(예수정)은 같이 사는 동인(기주봉)에게 자신이 겪은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완벽한 증거(정액이 묻은 속옷)까지 있지만 세상은 그렇게 정의롭게 돌지 않는다. ‘69살의 여자와 29살의 남자’라는 거리감 앞에 정의감은 무뎌진 모양이다. 그리고, 남자(김준경)가 되려 상호합의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여러 불완전한 기억을 근거로 효정을 치매 환자로 몬다. 그리고 경찰 수사는 미적거리고, 법원마저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세상은 색안경을 쓰고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며, 효정은 혼자서 이 모든 불온한 시선에 맞서야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 효정은 힘겹게 건물 옥상을 올라간다. 손에 들린 종이에는 ‘제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피해자가 어린 효정이든 젊은 효정이든 늙은 효정이든, 가해자가 19살이든 29살이든 79살이든,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 불편하고 불쾌할지 모른다.
이 영화는 작년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을 기리는 ‘박남옥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오늘 밤 늦은 시간에 시청자를 찾는다. 임선애 감독은 오랫동안 충무로에서 스토리보드작가로 활동하다가 이 영화로 감독데뷔를 했다. 무겁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예수정 배우의 빛나는 연기로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KBS독립영화관 <69세>는 오늘밤 12시 1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