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
기억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지만 때론 현재를 잠식하기도 한다. 1955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후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범죄에 희생 당한 이들은 그 기억을 지점으로 이전과 같을 수 없는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기억을 담아낸 영화 '기억의 전쟁'은 그들의 상처가 지닌 참혹함을 마냥 전시하지 않는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닌, 현 세대가 역사가 낳은 흔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은 결국 남겨진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Q.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2019년 여름에 마쳤다. 이후에도 쭉 암스테르담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암스테르담에서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석사 공부를 했었고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쯤 공교롭게 돌아오게 됐다. 그 곳에서 공부했던 경험은 ‘모두는 다 고유하다’는 사실을 몸을 통해 경험하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는 같음을 강요하는 사회다보니 다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학교를 그만뒀다’, ‘부모님이 농인이다’, ‘수화 언어가 모국어다’, ‘이중 언어 사용자다’라고 하면 깜짝 놀라며 항상 질문들을 내게 던진다. 이런 모든 일들이 암스테르담에서는 이상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이상하고 틀린 것이 아니라 난 ‘one of them(그들 중 한 명)’일 뿐이고 모든 사람들은 다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이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줬다. 그것이 내 작업에도 확실히 영향을 미쳤다.
Q.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등 사회의 사각지대에 배치된 이들을 조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평소 '사회적 소수자'가 불평등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붙인 이름 같다. 내가 사회적 소수자로 태어났기에 그에 대한 책을 쓰고 이러한 작품을 만든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저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다름이 주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획일화된 한국사회가 잊고 있는 가치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각지대를 비춘다는 이야기 대신, 사각지대에 있는 아름다움을 비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Q. 그러한 마음이 ‘기억의 전쟁’ 제작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로 결심한 시작점이 궁금하다.
할아버지가 참전 군인이었다. 자신을 '참전 용사'라 불렀고 베트남 전쟁 때 받은 훈장들과 표창이 집에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막대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크고 나서는 한국 군인이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들이 상충하면서 왜 하나로 엮이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베트남 다낭에 많이 갔지 않나. 그 다낭에서 30분만 택시를 타고 나가면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던 마을이 나온다. 실제로 베트남에 갔을 때 작품에도 나왔던 탄 아주머니가 잘 왔다고 하면서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다. 그런데 그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참전을 해서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할아버지가 참전 군인임을 알면서도 아주머니는 어떻게 밥을 해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개인의 질문이 남았다. 탄 아주머니를 찍다보면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시작했다.
Q. 다큐 제작 여건이 현실적으로 힘든 만큼 해외에서 진행되는 촬영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
촬영하는 소재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학자분들, NGO 운동가분들이 있었다. 베트남 평화기행이라고 하는 투어를 다니면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그 후 연을 맺어서 해외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우리끼리만 만든 영화는 절대 아니다.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동해왔던 선배들이 있어 가능했다.
Q. ‘기억의 전쟁’은 전쟁 범죄라는 참혹한 소재지만, 그 참혹함을 전시하지 않는 영화라 좋았다. 잔잔하게 다가오는 감동이 있었는데 이는 감독이 의도한 바인가?
‘기억의 전쟁’은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고 이야기하지 않는 작품이다. 2021년을 살아가며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실 ‘꼭 피를 봐야 그게 아픈지를 아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법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Q. 한국인으로서 한국군이 일으킨 범죄를 작품의 소재로 꺼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치 가해자로서의 유산을 상속 받은 느낌도 있었을 것 같다.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결론은 한국인, 베트남인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가 같이 고민해야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환경오염 같은 문제다. 한국전력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 투자 논란과도 같다. 한국 전력이 투자해서 만들어진 석탄발전소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베트남 문제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고민을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단순히 한국군이 베트남 사람을 죽인 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앞으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전쟁들이 미래에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Q.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통해 미래를 이끌어나갈 세대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당부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질문을 자기 일상 속에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 나도 나의 방식대로, 기자님도 기자님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나.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시위에 나가고, 또 누군가는 후원금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BS미디어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