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
가족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것이 어떠한 기억이었든 그것을 먹고 자란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향한 강인한 태도와 굳세게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는 농장을 일으킨다는 꿈 하나로 아칸소 시골 동네로 이사한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그의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 장모님 순자(윤여정 분), 아들 데이빗(앨런 킴), 딸 앤(노엘 조 분)이 겪는 현실이 담겨 있다.
아메리칸 드림. '미나리' 속의 한인 가족이 겪는 일들을 꿈에 비유하자면 환상보다는 악몽에 가까울 것이다. 제이콥은 부단히 자신의 성공, 그리고 가족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어렵게 재배한 채소들은 물이 부족해 말라가고, 어렵게 수확하자 약속을 어기는 담당자 때문에 판매할 기회조차 잡기 힘들다.
고난과 고난을 거듭하는 그의 표정에는 혼란이 가득하다. 당차게 시작했던 꿈에도 점차 힘들어지는 현실의 벽에 분노하고 결국 가족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며 그들 사이의 틈은 점점 벌어지기만 한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불화, 그로 인해 영향받는 아이들. 할머니인 순자마저 균열의 요소가 되며 걷잡을 수 없이 바스러진 관계는 서로를 지탱하는 연대의 힘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하지만 '미나리'는 단순히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만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가족의 연대에 대해 조명한다. 이 모든 메시지 전달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정이삭 감독의 연출력이 있었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바탕이 된 작품이기에 타지에서 겪는 가족의 일상, 특히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는 할머니의 존재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섬세하다. 할머니가 군밤을 입으로 잘라주자 외국에서 오래 자란 데이빗이 먹기를 거부하는 장면 같이 세대, 성장 환경, 문화 등 가족 간의 다양한 차이들을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여낸 장면들이 인상 깊다.
이어 윤여정을 비롯한 모든 출연진들의 연기가 경이롭다.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연기를 비롯해, 실제로 한 가정이 된 듯한 완벽한 연기 호흡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제이콥의 아들 데이빗 역을 훌륭하게 연기한 앨런 킴의 연기는 심장을 부여잡는 귀여움을 선사한다.
'미나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이다. 척박한 타지에서도 풍성하게 자라나는 한국의 채소 '미나리'처럼, 가족은 매번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미나리'는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이들을 향한 찬사이자 가족의 의미를 먹고 자란 우리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원더'풀'. 오늘 하루도 가족의 의미를 비료 삼아 삶을 일궈나가는 우리를 열렬히 응원하는 작품이다. (KBS미디어 정지은)
2021년 3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사진= 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