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알바
2024년 개봉된 김다민 감독의 <막거리가 알려줄거야>는 아주 특이한 판타지 영화이다. 관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토리 전개에 놀라면서 감독의 무한상상력에 감탄했다. 그런 지구종말적 상상력을 발휘한 김다민 감독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OTT의 신작을 연출했다니 일단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꿀알바>는 극한상황에 몰린 한국청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눈에 들어온 ‘초고소득 단기알바’ 명함에 혹해 전대미문의 알바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이다. 익숙한 헬조선 청년 잔혹사일까, 아니면 김다민 감독의 기발한 판타지호러일까. 기대 속에 발을 들이면 순식간에 빠져든다.
변혁준(이재욱)은 전세사기에 사채업자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다 마지막 동아줄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허름한 건물의 ‘거미인력’이란 곳. 사장(이희준)은 귀가 솔깃한 일자리를 제안한다. 편의점 알바. 시급이 꽤 세다. 그런데 이상한 편의점에서 괴상한 알바생 최희동(최현욱)을 만나게 되고 이 알바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알바를 거듭할수록 시급이 껑충껑충 뛰는 것이다.
혁준은 생명까지 위험해지는 일자리 – 출장이벤트, 택배 상하차, 우유배달, 제약회사 임상실험, 건설현장, 놀이동산 알바에 주저주저하며 뛰어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역시 백수인 동생 지윤(김민하)도 거미인력에 발을 디디고 이 꿀알바의 위험성을 직감한다. 그런데 그들 주위에 ‘노동재해보호원’이라는 수상한 명함을 가진 연주(고민시)가 등장하여 시청자를 ‘노동의 세계’의 이면으로 이끌게 된다.
꿀알바
주기적으로, 혹은 상시 듣게 되는 뉴스가 ‘취업한파’, ‘고용시장 불안’, ‘서민경제 불안’ 같은 것들이다. 주인공 변혁준은 그런 취약한 한국 경제의 산증인이다. 어릴 적, 아버지(백현진)는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엔 압류딱지가 붙어있었다.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보단 악몽이 오랫동안 청년을 옭아맨다. TV 예능 [아빠의 기적]에 출연한 아버지는 외발자전거 위에서 저글링에 도전한다. 그 모습은 가족의 경제적 토대처럼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사라진다. 그 자리에 혁준이 들어선 것이다. 안 좋은 쪽으로. 중학시절 육상 유망주였던 동생도 경쟁의 악몽에 시달리다 지금 이런 꼴로 살고 있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치열하고, 모자라지만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거미인력’은 그런 사람을 끌어들인다. 무슨 일을, 왜, 어떤 방식으로 시키는지는 알 수 없다. 평범하고, 쉬운 것 같은 ‘알바’ 자리의 이면을 말이다.
<꿀알바>는 적당히 판타지와 호러를 섞어서 악몽 같은 청년 취업전선을 그리는 듯하다. 하지만 노동재해보호원 사고조사관이라는 연주(고민시)의 정체가 드러나는 7부에 접어들면서 이게 단순한 ‘직업의 세계’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연주는 무려 40년 전, 방직회사에서 일하는 미싱사 여공이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 시절의 그 노동현장 말이다.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며 뿌려대는 오물의 끔찍한 실체는, 1978년 실제 일어났던 '동일방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여공들은 사측의 폭력적 몽둥이세례에 불가항력 쓰러진다. 이때 누군가가 연주를 캐비닛에 숨기며 말한다. “살아서 이 일을 세상에 꼭 알려줘.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그런 열악한 노동의 현장, 핍박받은 노동자의 현실을 넷플릭스가, 김다민 감독이 극적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아마도 <꼬꼬무> 등을 통해 이때의 일을 전해 들었다면 ‘연주의 부활’의 의미를 이해할지 모르겠다.
판타지에, 호러에, 황당한 활극으로 점철된 청년 모험극 <꿀알바>는 노동현장에서 스러져간 노동자와 힘없는 서민의 몰락을 기리는 만가(挽歌)이다. 물론 그게 40년 전에 멈춘 고발극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비극이란 것이다. 한국 영화업계가 넷플릭스를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다. 한국의 노동사를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라는 장르에 담아 글로벌 OTT의 대중성과 결합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다민 만세, 제작사 쇼트케이스(총괄기획 한준희) 만세!
▶꿀알바 (영제:Dead-End Job) ▶감독:김다민 ▶극본:경민선,이신지 ▶출연: 이재욱,고민시,김민희,이희준,최현욱,윤경호,백현진,김수진,조현철,윤병희,고창석,김시은 ▶공개: 2026년 10월30일/ 청소년관람불가 ▶넷플릭스 8부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