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수많은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 다큐로 만들어졌다.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 것도 있다. <피부색깔 꿀색>, <트윈스터즈>, <리턴 투 서울> 같은 작품들. 이 슬픈 목록에 한 작품이 더 추가된다. 갓난아이 때 덴마크로 보내진 아이는 그곳에서 교수가 되었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그 사람을 영화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영화진흥위원회 2층 작은 카페에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감독의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이다.
Q. 우선 이름이 길다. 긴 이름에 대해 소개해 달라.
▶황태경 감독: “내 이름은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Taekyung Tanja Inwol Sørensen)이다. ’황인월‘은 입양서류에 적힌 한국 이름이고, 쇠렌센은 나를 입양한 덴마크 가족 성(姓)이다. 탄야는 입양된 후 얻은 이름이며, 태경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모든 이름을 다 유지하고 싶었다. 이들 모든 이름이 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경’이라 지은 이유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출생증명 서류를 볼 수 있었고 나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그걸로 사주를 보았고, 그때 그 이름을 지었다. ‘무당’이 말하길 인월이라는 이름은 나의 사주에 비해 약하다는 것이다. 불(火)의 기운이 더 필요하다며 ‘태경’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이다. 쇠와 나무 기운이 있다고 했다. 3년 쯤 전 일이다. 그 사람이 용한 무당인지는 모르겠다. 처음 만난 무당이니까. 어쨌든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센 이름이 필요하라고 했다.”
Q. 영화 초반과 끝에 한국 국회에 초청되어 발표를 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계기로 그 자리에 섰는가.
▶황태경 감독: “2025년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외입양사건을 다뤘는데 그 당사자 56명의 한 명이다. 이 영화는 진화위가 조사를 한다는 것을 알기 전에 시작한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도중에 제 서류를 제출했었다.”
Q. 포함된 56명 중에 따로 만나본 사람이 있는지.
▶황태경 감독: “그중 6명 정도는 아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비슷한 경우이다. 조작된, 위조된 문서를 기반으로 해외에 입양되었다는 점은 유사하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 생모나 생부를 다시 만났다. 입양 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제가 아는 가장 나이 많은 분이 1970년대 출생이다. 저는 1982년에 생이다.”
Q. 한국은 언제 처음 왔는지, 아니 처음 돌아왔는지.
▶황태경 감독: “2020년에 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펜데믹 때문에 2022년에야 올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사전 조사차 왔었다. 그 당시에는 이 프로젝트를 도와줄 프로듀서를 찾는 수준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한국과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KSS를 찾아가서 저의 출생문서를 요청하였다. 그들이 이 정도 두께의 문서 홀더를 보여줬는데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그랬다.”(그런데 결국 자신의 정보를 보았다.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 “해외입양인 커뮤니티가 있다. 한국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경우가 있다. 입양에 관련된 문서를 얻거나 정보를 찾는 노하우를 공유한다. 것을 통해 출생기록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진화위 조사가 시작되고 저의 모든 개인정보를 지워버린 공식 입양 서류와 이번에 새로 확보한 출생 서류를 대조해 서류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 이번 작품의 한국 측 프로듀서(Co-producer)는 조소나(Sona JO)가 맡았다. 이번 방한 때 통역도 맡았다)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Q. 여기서 궁금해진다. 당시 많은 한국 고아들이 왜 북유럽 쪽으로 입양되었을까?
▶황태경 감독: “그렇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는 인구 대비로 보아 한국인을 가장 많이 입양한 국가이다. 덴마크의 경우는 70여 개 나라에서 입양아를 받았다. 한국인이 제일 먼저 입양되었고, 이어 다른 나라가 따라온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내부적으로 국내 입양이 어려워지면서 해외 입양에 눈을 돌린 것이다.”
Q. 그 당시에 왜 한국 아기를 택했을까.
▶황태경 감독: “입양과 관련해서는 크게 세 개의 법적 권리가 있다. 아동의 권리, 입양부모의 권리, 생부모의 권리. 이런 게 충돌하면 입양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에서의 입양은 쉬웠다. 아기나 생부모의 권리는 없으며, 오직 덴마크 부모들의 권리만 인정되니 선택하기가 쉬웠다.” (덴마크는 왜 해외 입양을 생각했을까?) “60년대 산업적으로 성장하며 아이를 원하는 커플이 많아졌다. 일종의 ‘입양 산업’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좋지 못한 환경의 아이를 우리가 구원해준다'는 서사가 형성되었다. 한국은 서울올림픽 전후로 대외 이미지 때문에 해외로의 입양이 줄어들었다. 그 다음은 태국, 네팔,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 등지로 확대된 것이다.”
‘홈시크:바다의 끝에서’
Q. 요즘 한국에서는 독립영화나 다큐를 찍을 때는 작은 카메라를 많이 활용하는데 영화를 보면 상당히 큰 카메라로 찍는다.
▶황태경 감독: “다큐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게 덴마크에서 일반적이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덴마크에서는 다큐도 극영화에 준하는 인정을 받고 있다. 펀딩할 때도 그렇다.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에도 단순한 관찰형 다큐멘터리보다는 개념적(컨셉츄얼)한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팔로잉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은 명확했다.”
Q.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가.
▶황태경 감독: “자신에 대한 사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과 입양 제도의 구조에 대해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려면 시각적 언어(비주얼)를 철저히 통제하고 조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저의 영화는 침묵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말해주지 않는 침묵, 덴마크에서 말해주지 않은 침묵. 그 비밀을 어떻게 영상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콘셉트를 명확히 해서 지금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Q.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그동안 해외입양아 문제를 다룬 작품은 많다. 다큐, 드라마, 영화 등. 보통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이야기이다. 혹은 정책 당국에 항의하는 것도 있고, 관객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작품도 있다. 감독님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나.
▶황태경 감독: “해외입양을 다룬 다큐를 계속 보았다. 감히 말지만 그런 작품 덕분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영화들, 그 창작자 덕분에 나는 백그라운드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곳에서 출발할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에게 그저 ‘자아를 찾아 헤매는 나’를 지켜보라고 초대하기보다는, 제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구조’들을 함께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 덴마크 가정에서 자랐지만 온전히 덴마크인은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보다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Q. 작품을 보면 아주 어릴 적 시내에 나갔다가 한국 사람을 처음 보고 특별한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있다. 어릴 때 한국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
▶황태경 감독: “아주 어릴 적부터 제가 덴마크 출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을 봐도 저와 전혀 닮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너무나 명백했기에, 제가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기억은 없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은데, 어릴 때 저와 닮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하다가 닮은 사람을 보았던 그 일화를 다시 들으면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과 닮은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어린아이의 처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Q.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한국과 덴마크가 축구 시합을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황태경 감독: “좋은 질문이다. 어릴 때부터 덴마크에서 성장했고, 부모님이 충분한 정보를 주시지 않았기에 어렸을 때는 당연히 덴마크를 응원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성인이 되어서는 한국 팀을 응원한다. 단순한 이유는 나는 잘하는 팀을 응원한다.” (FIFA최근 랭킹을 보면 덴마크가 21위, 한국이 32위이다) “사실 저의 덴마크 친구들은 모두 디아스포라 출신이다. 덴마크에 살지만 뿌리가 다양하거나 혼혈인 친구들이라, 우리 모두 여러 팀을 응원한다. 그래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시즌이 되면 다들 바쁘다. 이 팀 응원하랴, 저 팀 응원하랴.”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Q.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루는 다큐라면 음식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도 등장하더라.
▶황태경 감독: “한국의 인천에 와서 태어난 곳과 가까운 식당에서 오징어볶음을 먹는 장면이 있다. 맵지만 맛있다. 먹는 것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연결점이 된다. 한국에 대한 연결 의미한다. 영상적으로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사람으로서의 소울 푸드가 무엇인지?) “덴마크 음식에는 정서적인 연결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한국 음식에 훨씬 더 깊은 유대감을 느껴서 덴마크에서도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Q. 한국의 산과 한국의 바다, 그리고 덴마크의 바다가 감독님의 상황을 비추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황태경 감독: “산과 바다에 대해 말씀드리면 매우 평평한 평야 지대였다. 산이 아예 없다. 그래서 제게 한국의 ‘산’은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리고 저는 바닷가에서 자랐고 바다 근처(인천)에서 태어났는데, 둘은 같은 바다로 이어져 있다. 저에게 ‘바다’는 연결을 뜻하고, 덴마크의 ‘평평한 풍경’과 한국의 ‘산’은 대비를 이룬다.”
‘홈시크:바다의 끝에서’
Q.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살풀이를 하는 것 같고,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 그런데 제사상차림이 일반적이진 않다.
▶황태경 감독: “제사 의식에 함께 나온 다른 세 여성은 저처럼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제 친구들이다. 서류상으로는 모두 똑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덴마크 가정으로 가게 되었지만, 이는 매우 우연하고 무작위적인 일이었다. 제가 친구의 삶을 살 수도 있었고, 친구가 제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제사 장면을 통해 우리는 우리만의 관점과 위치에서 일종의 ‘규격에서 벗어난(incorrect) 제사’를 지내보고자 했다. 제사상에 놓인 사진들은 우리 각자의 ‘입양 번호’이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저곳에도 존재하는’, 즉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경계인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에게 ‘한국에서 우리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덴마크에 있기 때문’이라고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만약 맴돌다가 이 번호를 보고 저희들을 찾아오라고 번호를 쓴 것이다.” (이 이야기를 옮기면서 울컥했다)
Q. ‘시각인류학과’를 전공했다. 이게 영상학과에 가까운지, 인류학에 가까운 것인지.
▶황태경 감독: “시각인류학(Visual Anthropology)은 다큐멘터리의 한 갈래이다. 인류학이 탐구의 초점이라면 시각(영상)은 그 방법론이 되는 결합입이다. 문화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탐구하고 기록하는 방식이다.”
Q. 이번 부산방문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황태경 감독: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대한다. 한국에서 처음 상영하는 것이라 긴장되고 기대된다. 흥분된다.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1982년 한국 인천에서 태어난 ‘황인월’은 입양기관을 통해 덴마크 바르데의 한스 욘과 카렌 마리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들은 1985년 이혼했고, 카렌 마리는 마틴 로즈와 재혼하며 태경은 이들과 산다. 카렌 마리는 1988년 병으로 죽는다. 한스 욘과 마틴은 태경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었고, 한스 욘이 승소하면서 태경은 여섯 살에 다시 바르데로 돌아가 한스 욘과 그의 새 아내 마리안느(Marianne), 그리고 네 명의 남자아이들인 투에(Thue), 트롤스(Troels), 킴(Kim), 얀(Jan)과 함께 살게 된다. 열 살이 된 태경은 잠시 한스 욘과 단둘이 살았으며, 한스 욘이 자살을 시도한 뒤 마리안느와 다른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한스 욘은 65세에 호수에 빠져 사망했고, 몇 년 뒤 마리안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탄야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시각인류학과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시각인류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콜롬비아인 가족>(2020)에 이어 두 번째 다큐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태경탄야 인월 쇠렌센 감독의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세 번 관객을 만난다. 10월 9일, 10일에 이어 12일(월) 한 차례 더 상영된다. 영화상영이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GV)가 진행된다. (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