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마릴린 먼로는 전 세계 누구나 아는 신화적 아이콘이지만, 제게 필요한 건 박제된 환상이 아닌 '한 인간이자 여성 배우로서의 삶'을 향한 진솔한 탐구였습니다."
배우를 넘어 탁월한 시네아스트로 자리매김한 매기 질렌할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첫 연출작 〈로스트 도터〉(2021)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거머쥐고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던 그가 이번에는 특별상영 부문에 초청된 단편영화 〈플레시 임팩트〉(Flesh Impact)의 감독 자격으로 단상에 섰다.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매기 질렌할은 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창적인 시선과 연출관, 그리고 영화계 속 '여성의 언어'에 대한 날카롭고 깊이 있는 사유를 전했다.
마릴린 몬로 '버스정류장'
BIFF 공식 후원사인 제네시스의 제작 지원으로 완성된 런닝타임 17분의 〈플레시 임팩트〉는 "먼로가 100세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대담한 물음표에서 출발했다. 오디션장을 배경으로 100세의 먼로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로, 전설적인 대배우 엘런 버스틴이 100세의 먼로를, 다코타 존슨이 화려한 젊은 시절의 먼로를 맡아 2인 1역의 섬세한 호흡을 펼쳐냈다.
매기 질렌할은 "제네시스로부터 제안을 받고 일주일간 관련 서적과 영화를 파고들며 과연 내가 먼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화려한 스타성에 가려진 여배우의 실제 삶, 세상 속 여성의 자리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며 "창작자에게 전적인 자유를 준 후원과 엘런 버스틴, 다코타 존슨이라는 훌륭한 배우들의 생명력이 더해져 비로소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플레시 임팩트
특히 배우 캐스팅에 대해 "엘런 버스틴과 작업하는 것은 50년 넘게 축적된 거장의 연기 예술을 경이롭게 목도하는 시간이었고, 각본 단계부터 떠올렸던 다코타 존슨은 먼로의 복합적인 내면을 놀랍도록 깊이 파고들었다"며 "배우가 역할을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무대를 열어주는 것이 연출자로서 나의 지향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배우에서 연출자로 영역을 확장한 그의 영화적 궤적도 조명됐다. 영화감독 아버지(스티븐 질렌할)와 각본가 어머니(나오미 포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엔 여성 감독이 너무 적어 연기로 이야기를 전하는 길을 택했지만, 배우로서 정점에 다다른 순간 자연스럽게 연출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며 "그 뒤로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성 중심 영화 환경 속 여성 서사의 가치를 역설했다.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21편 중 단 한 편만이 여성 감독 작품인 점이 아쉬웠다. 여성이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를 얻으면 기존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며 ”남성 창작자의 글을 연기할 때마다 여성으로서 늘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성 창작자에게 온전한 자유가 주어질 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인 시선이 발현된다. 남성 중심의 시각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도 여성의 고유한 언어를 마주하고 배워가는 과정은 지극히 신선하고 매혹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배우의 시선으로 전설을 해체해 삶의 보편적 존엄으로 다시 빚어낸 매기 질렌할의 〈플레시 임팩트〉는 오는 15일까지 이어지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