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장의 눈빛에는 여전히 사람과 세상을 향한 깊은 통찰이 깃들어 있었다.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며 반세기 가까이 스크린에 삶의 결을 아로새겨온 허안화(쉬안화·許鞍華) 감독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영화계 내 여성의 위상을 드높인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까멜리아상’을 품에 안았다. 류성희 미술감독, 실비아 창(장애가) 감독에 이은 세 번째 주인공이다.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허안화 감독은 오랜 영화 인생을 반추하며, 한국 영화를 향한 솔직한 찬사와 자국 홍콩 영화의 미래,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끊이지 않는 열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이날 허안화 감독은 "솔직히 한국 영화를 보며 질투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한국 감독들의 열렬한 팬이 됐다"고 밝힌 그는 특히 배우 탕웨이를 언급했다. 허 감독은 과거 탕웨이와 영화 〈황금시대〉(2014)를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엔 내가 그녀의 연기력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한국 감독과 작업한 작품 속 탕웨이를 보며 그 매력을 온전히 훌륭하게 포착해낸 모습에 큰 부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한국 영화의 성장을 부러워하면서도, 최근 침체기를 겪고 있는 홍콩 영화의 잠재력과 후배들을 향한 신뢰와 애정도 잊지 않았다. 허 감독은 "투자가 줄어 제작 여건이 매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영화인들이 매우 똑똑하고 헌신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80~90년대 홍콩 영화가 오락과 상업성에 치중했고 배우들도 TV나 미인대회 출신이 많았다면, 지금은 연극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탄탄한 30~40대 배우들과 개성 넘치는 연출자들이 콘텐트의 본질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훨씬 더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며 홍콩 영화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짚었다.
부산국제영화제
1979년 미스터리 스릴러 〈풍겁〉으로 장편 데뷔한 허안화 감독은 홍콩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소외된 이웃과 여성, 노년과 돌봄의 문제를 집요하게 응시해 온 거장이다. 홍콩금상장영화제 감독상 6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 3회를 비롯해 〈여인사십〉(1995)과 〈심플 라이프〉(2011)로 중화권 주요 트로피를 휩쓸었으며, 베니스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주로 여성 인물에 집중된 것에 대해 그는 "여성만을 위한 영화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초기에는 남성들이 주로 하던 경찰·범죄 장르를 따라가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하고 끌리는 인간들의 갈등과 처지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인물들과 맞닿게 됐다"며 "내가 여성이기에 여성의 심리를 더 무의식적이고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 뿐, 특정 규정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1970년대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적인 옷차림과 행동을 취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여성 감독들이 본인의 개성과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일하는 환경으로 바뀐 점을 높이 평가했다.
허안화 감독의 창작 의지는 확고했다. "서 있는 것도 불안정하고 청력도 좋지 않다. 하지만 판단과 이해력은 개선된다. 기술 발전이 아니라 관점이 성숙했다. 지금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안다. 그래서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만들고 싶다. 커리어가 아니라 영화가 좋아서다." 규정되지 않는 감독으로 남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반세기 영화를 향한 집념이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