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BIFF)처럼 저 역시 오랜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시아에서 시작해 영화와 문화를 전 세계와 나누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렸고, 우리는 그 길을 이뤄냈습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배우 양자경(楊紫瓊/량쯔충/Michelle Yeoh)이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룬 영화 <더 레이디> 이후 15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자경은 40여 년에 걸친 영화 여정과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에 얽힌 소회를 담담하면서도 힘찬 어조로 풀어놓았다.
1985년 《예스마담: 황가사저》로 은막에 데뷔해 홍콩 액션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양자경은 1997년 《007 네버 다이》로 할리우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세계 최고 무대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양자경은 “할리우드에 처음 입성했을 때 내가 ‘소수자(마이너리티)’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주어지는 배역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전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배역의 외연을 넓히며 끊임없이 속도를 올려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0년 이안 감독의 무협 걸작 《와호장룡》으로 비영어권 영화의 벽을 허물었고, 2023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세계 영화사를 다시 썼다. 이어 올해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아시아 여성 최초로 명예 황금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앞서 윤여정 선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큰 길을 열어줬다”며 “한국영화는 전 세계 영화인이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모범 사례”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인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바이 슈에 감독)은 은퇴 후 루빅큐브로 세계기록을 세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양자경이 주연과 총괄 프로듀서를 겸했다. 집을 잃고 양로원에 들어간 80대 노인 ‘자오’를 연기한 그는 “내 어머니뻘 연기를 한다니 어머니께선 탐탁지 않아 하셨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새로운 도전을 꿈꿀 수 있다는 메시지에 깊이 매료됐다”며 “큐브의 무수한 조합처럼 삶의 가능성도 무한하다.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이어 끊임없이 신진 영화인과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60세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 신진 감독과 작업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본을 봤을 때 '이 사람들은 천재구나' 생각했다.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꿈꾼다”는 양자경은 “토론토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을 인상 깊게 보았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창동 감독은 물론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도 꼭 함께 작업해 동서양 영화계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3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양자경의 영화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을 통해 본인이 직접 선정한 ‘검우강호’(2010),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숀 베이커 감독의 단편 ‘산디와라’(2026)와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등 네 편이 상영된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