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노동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 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은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동의 전선에 뛰어든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청 업체로 좌천된 파견 직원 정은(유다인 분)과 하청 업체 직원 막내(오정세 분)의 만남 속에는 우리가 숱하게 겪어왔던 갑을 관계,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연대가 깃들어 있다.
Q. 전작 '복수의 길'도 외국인 노동자과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소 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 작품을 만들 당시에는 이주 노동자 문제가 크게 이슈되지 않았던 때였다. 준비하며 충격을 받았다. 신체 부위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손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공장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실제 이주 노동자 네팔 노동자가 손이 말려 들어갔는데 불법이어서 보건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 고국 소식이 궁금하다고 하더라. 그게 좀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아있다. 이러한 이슈가 그래선지 남 일처럼 생각되지 않았고, 풍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던 작품이 '복수의 길'이었다.
Q. 노동은 삶과 면밀한 문제다. 노동 문제에 관한 영화들을 준비하며 심적으로 힘든 경험도 많았을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할 당시 무기력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힘을 많이 받았다. 나 자신에게도 감정 이입이 되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정서적으로 '이것은 아직 내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건 여성의 문제였다. 내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 작가님을 모셨다. 직장 생활을 많이 한 분이어서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의 벽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극 중에서 송전탑에 올라가기 전에 철심이 들어있는 속옷을 정은이 벗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나.
Q. 이 영화는 많은 여성 영화제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실제 여성 관객들이 공감할 작품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런 치열한 고민이 성공적으로 보인다.
김자언 작가와 유다인 배우가 많이 고민했다.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건 인간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무엇이며 그런 부분들을 회복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성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그와 관련된 영화들을 장르가 어떻든 관심을 가지고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Q. 정은 역의 유다인 배우 이외에도 막내 역의 오정세가 등장한다. 두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으로 받는 내재되어 있는 고통이 있다. 겉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은이라는 인물에 담긴 내면의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유다인 배우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내면 연기다.(웃음) 유다인 배우가 '혜화동'에서 보여준 내면 연기가 인상깊었다. 오정세 배우는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받았고, 연기를 다이내믹하게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웃음) 하지만 그 힘듦이 나를 오랜만에 자극했고 너무 좋았다. 영양분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쉽지는 않지만 계속 고민하면서 해나갔던 과정들이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말하지만 오정세 배우는 스타니슬랍스키다. 연기의 진실을 획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현재의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추한다. 더불어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 같았다. 그런 면에서 나와 대비가 됐다. (웃음)
Q. 막내와 정은 사이의 묘한 기류가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초반에는 로맨스가 완성이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유다인 배우의 인터뷰에서 “로맨스로 이어졌으면 이 영화를 안 했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더라.(웃음)
(웃음) 사람의 시작은 나이가 들면 다른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대리 운전을 하고 인형을 좋아하는 건가봐요? 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인물에 대해서 감정 이입을 한다. 막내는 점점 남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 느낌은 있었다. 정은의 경우에는 사방에 차가운 곳에서 온기가 느껴졌고 로맨스로서의 온기보다는 동료로서 받아들인 것 같다. 동료는 같은 길을 간다는 뜻이 담긴 단어지 않나.
Q.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모든 관계들이 갑을 관계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자신의 생명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관계들이다. 그 속에서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유일한 관계가 막내와 정은인 것이 보기 좋았다.
정은이 대리운전을 불렀을 때 막내가 오는 장면이 있다. 인물들 사이에 어색함이 흐르지만 그 다음 장면을 나는 보여주고 싶었다. 세 사람이 같은 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세 사람이 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고 같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 장면을 살리기 위해 음악을 넣었다.
Q.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정은이 송전탑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공포와 불안 증세를 유발하는 음악이 나온다. 마치 그 공포를 그대로 표현한 듯 하다.
우리 영화에는 음악이 없으면 충분히 표현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타고 가는 장면도 그렇고 송전탑을 보는 장면에서는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송전탑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은 이명이 자주 들린다고 했다. 이명 그 자체가 음악에 들어갔다. 그 소리가 없다면 철탑과 주인공 정은과 정서적으로 묶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 촬영이나 엔딩 신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Q. 신기하다. 먼저 시나리오를 써 놓고 음악을 나중에 구상하고 붙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생각했다.
신경을 많이 썼다.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한다. 음악이라는 건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미장센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감독님도 영화 음악을 처음 하는 분이었는데 둘이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쳤는데 그것이 끝까지 나왔고 그것을 그대로 영화에 썼다.
Q. 들으면 들을수록 고심한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영화다. 또한 코로나 시국에 힘든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고 와 닿는 작품인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요즘 힘들지 않나. 나 스스로도 힘든 사회다. 그러기에 그 바닥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을 어떻게 가져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바닥인 부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더 내려가면 죽을 지도 모르는 그 지점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독백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KBS미디어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