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평 감독
성룡의 ‘취권’, 이연걸의 ‘황비홍’,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주성치의 ‘쿵푸 허슬’, 왕가위의 <일대종사>, 키아누 리브스의 <매트릭스> 등등.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홍콩 원화평(袁和平,위앤허핑) 감독이 무술감독을 맡았다는 것이다. 아버지 원소전(‘취권’에서의 성룡 사부 역)에게서 혹독하게 무술을 익히고, 이후 홍콩 영화판에서 엑스트라, 스턴트맨, 조역, 무술감독, 영화감독을 두루 거치며 찬란한 홍콩 액션영화의 한 장을 기록해 온 인물이다. 그가 신작 <표인:풍기대막>(鏢人:風起大漠/ Blades of the Guardians)을 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감독을 만나 홍콩영화의 찬란한 순간을 들어보았다.
<표인:풍기대막>은 기원 전 607년, 중국 수나라 때를 배경으로 한다. 수양제의 공포정치 아래 왕조가 저물어가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표인 도마(오경)가 어린 아이 소칠과 함께 황량한 서역을 돌며 수배범을 잡고 있다. 어느 날 의문스러운 인물을 장안까지 호송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장안행을 수많은 칼잡이가 뒤쫓는다. 이제 사막의 대폭풍 속에서 생사의 대결이 펼쳐진다.
Q. 먼저 마지막 장면, 이스트에그에 대한 질문이다. 원화평 감독과 장신옌 감독(이연걸 주연의 <소림사> 감독), 그리고 우빈(吳彬) 중국무술협회 부주석 세 사람이 배우들의 액션 실력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이건 젊은 세대의 일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원화평 감독: "맞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촬영할 때 우리가 줄곧 느꼈던 점이기도 하다. 현재 액션 무술계의 맥락에서 볼 때, 세대 간의 단절이 심각하다. 진짜배기 무술이 사라져가고 있다. 활기를 잃은 상태(鹹魚)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전성기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후발 주자들이 무술 스타로서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연출했다. 카메오로 가볍게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장 감독이 촬영현장을 방문하였고, 우리 노인네 셋이서 함께 이 시퀀스를 찍어보면 어떨까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뒤를 이을 후배들이 나타나 무술의 전통을 전승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Q. 감독님은 예전에 한국을 찾아 홍콩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지.
▶원화평 감독: "아주 오래 전 한국에 대여섯 번 정도 와서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거의 40여 년 전의 일이다. 어떤 배우들과 했는지 정확히 다 기억나진 않지만,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도 한국에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제작(監製)과 무술감독(動作設計)을 맡아 몇 편의 작품을 함께 작업했었다.“
원화평 감독
Q. 예전에는 주로 중국 홍콩에서 영화를 찍으셨다가 이후 중국 본토에서 액션물을 찍고 있다. 중국 서역의 광활한 사막 장면을 화면을 담아냈다. 로케이션에서 액션을 구상하거나 촬영할 때 차이가 있는지.
▶원화평 감독: " 극의 전개에 맞춰 액션에도 다양한 새로운 연출을 시도했으며, 촬영 기법 역시 기존 작품들과는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홍콩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장소가 협소했고, 실제 도심이나 거리에서 촬영 허가를 받기가 너무 어려웠다. 상당수의 장면은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반면 중국에서 촬영할 때, 특히 고전 시대극(古裝片)을 찍기에 로케이션 환경이 정말 훌륭하다. 수많은 배경이 도와주는 셈이다. 이번 <표인>처럼 광활하고 장엄한 사막 한가운데서 촬영하면 스크린으로 나오는 시각적 효과가 대단히 압도적이다. 본토(중국)에서의 촬영이 조금 더 유연하고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현재 홍콩에는 무술이나 스턴트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반면 본토에는 인재 풀이 넓어서 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주 많다. 구르고, 뛰어내리고, 싸우는 액션의 기본기가 홍콩보다 훨씬 훌륭하다. 이런 점도 본토에서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표인: 풍기대막
Q.영화 <표인: 풍기대막>은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가.
▶원화평 감독: ”처음에 주위에서 <표인>이라는 만화를 추천해 주었다. 만화를 다 보고 나니 인물들이 정말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며 개개인의 성격이 아주 뚜렷하다고 느꼈다. 만화 속 인물들이 고대 무협의 세계와 현대적인 감각 모두에 이토록 잘 맞물리게 묘사한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또한 캐릭터들의 액션 스타일도 저마다 확고한 디자인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 생각되어 관계자들과 논의 후 판권을 구입했고,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준비하게 되었다."
Q. 광활한 사막에서 펼쳐지는 액션 신은 어떻게 촬영하였는지.
▶원화평 감독: "늘 사막에서 수많은 말들이 질주하고, 추격전을 벌이며 맞붙는 전투를 구상해 왔다. 게다가 거대한 사막 안에서 갑자기 엄청난 모래폭풍이 몰아치고, 그 모래바람 속에서 인물들이 엉켜 싸우는 비주얼은 영화계에서 대단히 신선한 개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Q.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신 요소는 무엇인지? 외모, 인지도, 혹은 액션 능력 등 많은 조건이 있을 것 같다.
▶원화평 감독: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배우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감과 흥미를 끌 수 있는지이다.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배우의 마스크나 느낌이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 다음은 당연히 액션을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는가이다. 극 중 어린아이 배역도 정말 많은 오디션을 거쳐 지금의 '소칠' 역할을 찾아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주인공 '아루야' 역이었다. 원래 첫 번째로 낙점했던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 교체를 해야만 했다. 새로 캐스팅한 진려군(陈丽君)은 훌륭했다. 기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액션도 아주 잘 소화해 냈다. 다행히 그녀는 무용(舞台) 베이스의 기본기가 있었다. 말은 처음 타는 것이라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승마 훈련과 액션 합을 가르쳤다. 현장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거침없이 잘 달려서 초보자 같지 않았다. 고삐를 잡는 손도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사실 말 위에서의 액션은 아주 위험한데, 다행히 균형을 잘 잡고 중심을 유지해 주어 낙마 사고 없이 멋진 신인 배우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었다.“
Q. 감독 본인도 무술감독 출신이시고, 참여한 배우들이나 현장의 무술 감독들도 다들 액션 베테랑들이다. 촬영 현장에서 각자의 의견이 대립하는 일은 없었는지, 조율에 어려움 말이다.
▶원화평 감독: "현장에서 누구도 저의 전문적인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하면 다들 믿고 잘 따라주는 편이다. 만약 약간의 의문이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저와 상의를 한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거나 액션을 바꾸면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제가 들어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만약 별로라면 왜 원래 방식대로 가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다들 소통이 잘 되기 때문에 의견 불일치로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불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BIFAN 마스터클래스
Q.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과거 《매트릭스》 시리즈나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무술 지도를 하셨을 때, 홍콩 시스템과의 차이점을 느끼며 배운 게 있는지. 그런 경험이 이후 본토 영화를 찍을 때 어떻게 녹여냈는지.
▶원화평 감독: “정통 무술 액션에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을 결합시키면 대단히 훌륭한 비주얼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고, 그것이 신선함을 줄 것이라 믿어 할리우드 작업에 흥미를 가졌었다. 당시 서양 배우들에게 액션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든 배우들을 데리고 4개월 동안 기초부터 훈련을 시켰다. 스턴트 팀원들과 함께 기마자세 잡는 법, 주먹을 내지르는 법부터 두 달간 가르쳤고, 나머지 두 달은 약속된 액션 시퀀스를 통째로 외우게 한 뒤에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수개월이 걸리는 대공사였다. 중국 정통 무술의 쿵푸는 서양인들의 단순한 파이팅 스타일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미국 스턴트 팀원들도 저를 최고의 무술 감독이자 액션 연출가로 전적으로 존경하게 되었고, 감독으로서 액션 영화의 방향성을 잡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표인: 풍기대막
Q. 홍콩의 영화시상식에는 '무술감독상(最佳動作設計)'이 따로 있을 만큼 홍콩 영화계는 액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한 <구룡성채>를 보면 액션의 수위나 방식이 날로 진화한다. 이처럼 새로운 인재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위기감을 느끼는지, 아니면 선배로서 큰 위안과 뿌듯함을 느끼는지.
▶원화평 감독: "밥그릇 싸움 같은 생각은 전혀 안 한다.(웃음) 후배들이 액션을 잘 찍은 것을 보면 그저 대견하고 마음이 대단히 놓인다. 잘 찍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다. 못 찍으면 오히려 마음이 안 좋다. 그들이 설계한 액션들을 보면서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액션 영화인들끼리 서로 아주 긍정적이고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는 분위기이다. 홍콩 영화계에는 '네가 잘되면 내가 굶는다'는 식의 옹졸한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고. 서로 융화되어 잘 찍은 작품이 나오면 아낌없이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Q. 평소에 몸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매일 하는 운동이나 비결이 있는지. 그리고 영화 작업은 언제까지 계속하실 예정이신가요?
▶원화평 감독: "사실 지난 10년 동안은 작품 촬영을 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다. 중국의 촬영 현장은 아주 넓어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 작품이 없을 때는 쉬면서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른바 '누워서 하는 양생(養生)'이다.(웃음) 특별한 비결보다는 그냥 평범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다만 음식에 있어서는 기름지거나 비계가 많은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적게 먹는 편이다. 언제까지 영화를 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이제 곧 80세, 어쩌면 90세까지도 몸이 허락하고 능력이 된다면 계속 메가폰을 잡고 액션을 구상하고 싶다. 만약 정말로 몸이 안 따라주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거나 방해가 된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은퇴해야지.”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지.
▶원화평 감독: "현재 시나리오 작가를 섭외해 대본을 집필하며 차기작을 기획 중이다. 가장 주요한 목표는 당연히 《표인》 속편을 촬영하는 것이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원화평영화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