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빙빙
중국의 정상급 여배우 판빙빙(范冰冰)이 한국을 찾았다. 판빙빙은 지난 주 개막한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신작 <마더 부미>(地母, 감독: 총 킷 옹張吉安)와 함께 경기도 부천을 찾아 영화팬을 만났다. 판빙빙은 영화제 개막식에서 글로벌 아이콘상을 받았다. 개막식 다음 날 오후, 판빙빙은 현대백화점 중동점 문화홀에서 열린 <마더 부미>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한국취재진을 만났다. ‘마더 부미’(Mother Bhumi)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으며 ‘대지’를 의미하고 말레이시아의 토착 공동체를 지칭하기도 한단다.
1990년대 후반 정치적 격변기 속의 말레이시아 북부 한 농촌마을(부장 밸리/Bujang Valley)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더 부미>에서 판빙빙은 남편을 여읜 농부이자 무녀인 홍임(Hong Im)을 연기한다. 홍임은 낮에는 토지 몰수에 맞서 싸우고, 밤에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마 의식을 행한다. 식민지 시절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고, 이번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처음 왔다. 최고의 기술이 이곳에서 펼쳐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질도 너무 좋고, 품질도 좋았다. 이게 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특징인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는 <마더 부미> 역시 굉장히 판타스틱하고 신비로운 영화이다. 어제 부천에서 굉장히 중요한 상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저에게는 굉장히 큰 격려이자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BIFAN이 30주년이 되는 해라고 들었다. 마침 저의 연기 생활도 올해로 딱 30년이 되는 해이다. 참 아름다운 인연이 아닌가라는 생각한다.”고 한국 부천을 찾은 소감을 밝혔다.
Q. 판빙빙 배우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판빙빙: “예전에 한국에서 영화촬영도 했었다. 한 10여 년 전쯤에 장동건 씨와 같이 한 영화 <마이웨이>에서 강제규 감독님과의 협업이 굉장히 즐거웠다. 한국은 영화 산업이 발달했고, 감독과 연기자들이 거의 최고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하게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한국에서 많이 주어진다는 생각한다. 또 다른 한국작품 <녹야>는 코로나 시기에 찍었던 작품이다. <녹야>의 대사의 50%가 한국어였다. 당시엔 정말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많이 잊어버렸다. 한국을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영화산업이 너무나 부럽다. 소재도 풍부하고 현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거나, 복잡한 인간관계들을 작품에 잘 담아낸다. 뛰어난 영화적 기술을 한국 영화산업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이 분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영화를 찍고 있으며, 뛰어난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판빙빙
Q. 요즘 영화계 화두는 온통 AI이다.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판빙빙의 생각은 어떤지.
▶판빙빙: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작원가를 아주 많이 낮춰준다. 다양한 표현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일부 연기자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큰 장면들, 예를 들면 전쟁 신 같이 큰 규모의 군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연기자를 동원해야한다. 이런 장면들은 원가를 절반, 혹은 그 이상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에이아이는 그러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연기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라 단순한 연기는 대체할 수 있겠지만 감정이 들어가는 복잡한 것, 섬세한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AI의 현 단계 기술로는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기술이 아주 많이 발전한다면 가능성은 있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이라든지, 직접 체험한 인생,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어 내적인 표현들이기 때문에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연기자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Q. 배우로서는 AI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판빙빙: “에이아이가 젊은 감독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현실로 완성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 제 이미지를 AI로 만들어서 작품을 만들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문제에 승낙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계속 모색하고,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에 연기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AI에게 넘겨준다면, 그래서 AI가 대신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준다면 인간연기자는 점점 더 게을러질 것 같다. 연기자는 살아가면서 삶이 주는 소리를 듣고, 느끼고, 그것을 다양한 역할 속에서 표현해 내는 것이다. 만약에 AI가 일을 대신해 준다면 우리는 너무 게을러질 것이다. 하지만 향후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정확한 답을 들려드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가능성은 열어놓고, 무엇을 할 수 있다없다 정해놓지는 말고,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Q. 30년 연기생활을 되돌아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빙빙: “인생을 살아가며 각자 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연기였던 것 같다. 살아가며 저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역할이 있다.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여자라면 반드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떤 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 인생에서의 최애는 단연 연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30년을 계속하여 연기를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어제 영화제 개막식에서 한 중년 여배우가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중년을 지나 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도, 무대에 섰을 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자세가 연기자로 살게 하는 것 같다.”
'마더 부미'
Q. <마더 부미>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복잡한 심리스릴러이기도 하다.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판빙빙: “정말 어려운 영화였다. 저는 중국인인데 말레이시아의 현지인, 화교 역할을 해야 했다. 제일 먼저 언어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다섯 개의 종류의 언어를 사용을 해야 했다. 말레이시아어, 민남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그리고 현지 원주민의 말인 시암어를 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제가 맡은 역할이 무속인이었기에 주문도 외워야 했다. 굉장히 어려웠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언어의 귀재였다. 감독님하고 3~4개월 정도를 언어 연습을 했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대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문화, 역사, 정치적인 요소들이 이 영화에 모두 다 포함이 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만 금마장 영화시상식에서 여주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 영화로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Q.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이 행운이라고 했는데.
▶판빙빙: “개인적으로 중국인으로서 말레이시아 영화에 참여해서 이렇게 큰 상을 받았다는 것 저 자신에게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총 킷 옹(張吉安) 감독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왜냐하면 감독님께서 저의 내면에 들어있는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끄집어내 주셨다. 사실 이 영화를 보시면 처음 15분 정도는 누가 저인지 알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연기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변화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기자에게 굉장히 필요한 변화였고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굉장히 행운이었다라고 평가하고 싶다.”
Q. 말레이시아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판빙빙: “영화와 연기자 사이에도 어떤 인연이라는 게 있다는 것 같다. 제가 이 영화를 하게 된 것은 칭 감독님과의 인연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감독님의 이전 영화들을 보면서 재능이 뛰어나고 깊이가 있는 감독이시구나,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셨구나 생각을 했다. 동료들과 얘기를 나눴고, 감독님을 직접 뵙고 교류를 가졌다. 감독님께서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시는 분이시다. 코로나 기간에 시나리오를 열 편 이상을 쓰셨다. 그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영화를 언급했을 때 순간적으로 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바로 ‘제가 하고 싶어요’라고 자원한 것이다. 당시 감독님은 연기자가 아닌 그냥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일반인을 연기자로 쓰고 싶어하셨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원주민 농민, 여자 농부를 캐스팅할 생각이었는데 ‘판빙빙 같은 연기자가 어떻게?’라며 고민을 많이 하셨다. 제가 워낙에 하고 싶어했고, 감독님도 굉장히 용감하셨다고 생각한다. 모든 감독이 연기자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상호적인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렇게 찍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독님과 함께 더 작업을 하고 싶다. 말레이사와 관련된 영화작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고 싶다.”
판빙빙
Q. <마더 부미>는 말레이시아의 풍습을 담고 있다.
▶판빙빙: “이 영화는 굉장히 특별하다. 제가 다양한 역할들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전에 전혀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였다. 물론 영화 자체가 다문화적이기도 했고, 굉장히 많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언어의 문제도 있었다. 또 제가 맡은 역할이 촌부(村婦)역할이다 보니 특수분장까지 해야했다. 총 감독님은 말레이시아 키타(KITA) 출신이다. 영화에는 감독님이 어려서 직접 경험했던 자신의 스토리가 많이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의 문화라든지,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강렬한 애착 등에 대해 감독님이 굉장히 잘 알고 계셨다. 그 부분에서 제가 연기를 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또 제가 무녀 역할이다. 감독님의 아버지께서 실제로 현지에서 굉장히 유명한 무당이었다. 굉장히 신비한 힘을 가지고 계셨다. 현재 여든이시다. 무당과 관련한 여러 가지 것을 아버님께 직접 배우기도 했다. 어느 지역에서 촬영을 하는지 따라 많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Q. 말레이시아에서 영화를 찍은 소감은 어땠는지.
▶판빙빙: “말레이시아가 저에게 준 첫 번째 느낌은 소박함이었다. 아름다운 농촌이지만 모기가 굉장히 많다. 하루에 거의 30에서 50방정도 모기에 물렸다. 그렇게 물리면서 아주 고된 촬영을 계속 이어갔지만 성과가 좋았다. 그래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를 촬영한다는 건 항상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이 고달픈 만큼 결과는 아름다운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성과이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