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씽
‘AI’는 너무나 쉽게 추억을 소환한다. AI생성형 작곡 툴에 몇 번 클릭만 하면 우리는 곧바로 [뮤직뱅크]가 아니라 [가요톱텐]의 무대 1열로 날아가게 된다. 이렇게 쉽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대에 놀라운 노스탤지어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 아이돌의 탄생과 해체, 그리고 눈물겨운 컴백의 순간을 지켜보게 된다.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열정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절에 대한 우화이다.
오래 전 어린 현우(강동원)는 ‘너 괜찮다“라는 소속사 대표(신하균)의 꾐에 빠져 허름한 건물 지하 연습실에서 상구(엄태구)와 도미(박지현)를 만나 운명적으로 3인조 혼성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을 결성하게 된다. 잘 나가는 것도 한 순간. 표절과 스캔들로 트라이앵글은 눈 깜짝할 사이 대중의 시야와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이제 중년이 된 이들이 모인다. 생업과 생계, 현실이 녹록치 않아도 무대에 대한 열정을 영원히 파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은 다시, 아니 이번엔 제대로 무대를 빛낼 수 있을까? 목표는 지역 방송사 축제 무대다. 전국투어도, 스타디움 콘서트도 아니다. 그저 다시 한 번 무대에 서는 것이다. 무대에서 춤추고, 랩하고, 노래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셋, 트라이앵글이 말이다.
<와일드 씽>의 손재곤 감독은 지난 세기말 충무로에 발을 디딘,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어 했던 시네마니아 세대에 가깝다. 한겨레에서 영화팬을 유혹했던 ’영화교실‘에서 영화제작 수업을 듣고 아마추어 동료들과 함께 당시 꿈의 장비였던 소니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 그게 입소문을 타고 영화제에 소개되었다. 35만원으로 완성된 전설적인 단편 <너무 많이 본 사나이>다. 히치콕식 서스펜스를 품은 이 영화는 아마추어의 열정만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리곤 충무로에 진출해서 한석규, 김혜수 주연의 데뷔작품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작품을 만들면서 충무로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그가 <와일드 씽>으로 돌아온 것이다. 히치콕의 긴장감이나 시네필의 애정은 줄이고, 세월이 지나도 감출 수 없는 열정으로 채워진 영화이다. 영화는 한때 영화밖에 모르던 청춘이 중년이 되어 돌아보는 자기 고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와일드 씽
’트라이앵글‘의 세 멤버는 필사적이다. 데뷔를 위해, 무대를 위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내달린다. 당연히 이를 연기한 배우들도 필사적이다. 단지 무대에서 그럴싸하게 아이돌처럼 보이려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현생을 벗어나서 무대 위 아티스트만이 만끽할 수 있는 퍼포먼스에 진심이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세 배우는 단순히 아이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한때 무대가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세 멤버의 결속력에 본드를 칠하는 인물이 발라드가수 최성곤(오정세)이다. 아슬아슬, 비틀비틀, 흔들흔들 하던 무대는 중반을 넘어서며 폭주하는 동력이 된다.
여기까지 함께 달려온 관객이라면 ’엑스포‘유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했지만‘ 무대에 섰다는 성취감일 것이다. 그들은 그 뒤 어떻게 될까. 인생을 배운 리더와 잘 아는 매니저가 있기에 ’월드컵‘ 유치 무대에 오를지 모른다. 과하게 욕심내지 않은 야망으로, 과하게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박재환.2026)
▶와일드 씽(Wild Sing) ▶감독:손재곤 ▶출연:강동원,엄태구,박지현,오정세,신하균 ▶제공/배급: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어바웃필름 ▶107분/12세이상관람가/2026년 6월 3일(수)개봉





